/이용욱 전주대학교 인문대학장

인터넷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의식적 공간이다. 이 공간의 핵심 가치는 네트워크이며, 연결의 중심에 하이퍼텍스트가 있다. 문자텍스트에서 하이퍼텍스트로 지식의 형식과 내용이 변화하고 총체적, 선형적, 인과적, 누적적이었던 텍스트의 구성과 작동원리가 해체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연결된 정보망’인 네트워크 상에서 진행되면서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해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근육과 자본의 시대가 가고 창조적인 두뇌와 지식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 한 복판에 네트워크-공간을 종횡하는 창조적인 스마트 군중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식 생산과 유통과 공유와 소비를 둘러싼 행위자들의 적응과 학습의 상호작용을 지식 생태계(knowledge ecosystem)라고 한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거나 선택되면서 개체들간에 상호작용하는 생물적인 환경을 지식을 둘러싼 활동에 비유한 것이다. 지식 생태계는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환경에 적응하며 학습하는 주체들이 자신의 역할을 통해 지식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성장시켜 새로운 지식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진지한 읽기는 공감과 이해, 상상과 창의,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준다. 하이퍼텍스트는 제공해줄 수 없는 이 특별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정보를 편집해 지식으로 발전시키는 지혜를 진지한 독서를 통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 사회에서는 퍼즐형 사고와 정보 처리력이 요구되었지만, 성숙 사회에서는 레고형 사고와 ‘정보 편집력’이 필수적인 기량이다. 정보 처리력은 조금이라도 빨리 정답을 찾아내는 힘을 말한다. 과거의 교육은 주로 ‘보이는 학력’이라는 정보 처리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형 성숙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질은 정보 편집력이다. “정보 편집력은 익힌 지식과 기술을 조합해서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도출하는 힘이다.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수긍할 수 있는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도출하는 힘이란 단순히 퍼즐 조각을 정해져 있는 장소에 넣는 것이 아니라 레고 블록을 새롭게 조립하는 것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조합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요구된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정보 처리력에서 필요한 것이 ‘빠른 머리 회전’이라고 한다면 정해진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정보 편집력에는 ‘유연한 머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보편집력의 핵심은 양질의 정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억해 다시 배치하고 배열하여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만나 새롭게 구성된다. 여기에는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구비문학이 전승되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내듯이,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새롭게 변형될 뿐 미증유의 텍스트가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최대한으로 활성화된 공간이 웹이다. 웹의 하이퍼텍스트는 소통되면서 동시에 재구성된다. 하이퍼텍스트에 관한 한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독자(reader)라기보다는 게이머(gamer)에 가깝고, 저자(author)라기보다는 제작자(maker)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텍스트가 키트(kit)라면 하이퍼텍스트는 레고(lego)이다. 선택된 작가만이 키트를 완성할 수 있다. 문학교육은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키트를 학생들이 자유롭게 분해하고 해체해서 자신만의 레고블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수동적 독서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레고블록을 조립해 독창적인 키트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블록이 모여 키트가 되고, 읽기와 쓰기가 서로 연결돼 있듯이, 텍스트와 하이퍼텍스트 관계 역시 상호 보완적이다. 작가와 독자, 시간과 공간, 층층과 겹겹, 선형성과 비선형성, 중심과 탈중심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어 네트워크-공간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텍스트와 하이퍼텍스트를 아우르는 문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 상생의 구조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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