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오지 않는다는 외할아버지 / 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 스물 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가 23살의 나이에 썼다는 시 ‘자화상’의 앞부분이다. 첫 시집 ‘화사집’의 첫 페이지에 실린 게 바로 자화상이다. 젊은 시절 삶과 시에 대한 고뇌가 압축된 절창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단호하고도 비장하게 그리고 있다.
  미당은 전북 고창 출생으로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빛’으로 등단했다.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해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모두 천여 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 세계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에는 보들레르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색채가 짙었다. 해방 후에는 영겁의 생명에 관심이 쏠렸다. 인간으로서 져야만 하는 업의 고통을 응시하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반적으로 그의 시는 토속적이고 불교적인 내용을 주제로 한 서정시다. 문학적 완결성와 완성도가 높아 한국의 현대 시사에서 우뚝 솟은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씻기 어려운 오점이 붙어 다닌다. 바로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이다. 그가 평생 권력에 대해 기꺼이 순응한 이력이 미당 문학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완간됐다. 탄생 100주년이던 지난 2015년 발간을 시작해 올해로 완결지은 것이다. 편집위원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이와 관련 “미당 문학은 비언어를 포함해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 한다”며 미당의 시 세계에 대해 마치 ‘별들이 무지 많이 모인 안드로메다 성운’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편집위원들은 또 그의 정치적 행적에 대해서도 변호하는 발언을 했다. 위원들은 전체적으로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공정하게 평가할 것”을 주문했다.
  미당은 생전에 자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그의 문학에 대한 상찬은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이력이 늘 문제였다. 최근에는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사람이 이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논란은 많지만 그의 문학 자체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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