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국정에서는 시험을 통한 인재 등용이 보통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원성왕 4년(788)년 실시된 독서삼품과가 효시였다. 고려 광종 9연(958)년에는 정식으로 중국식 과거제도가 도입돼 이것이 조선조까지 이어졌다. 조선조 과거제도는 문과와 무과 이외에도 의과나 역과 등 잡과도 실시됐다. 당시 과거제도는 생원이나 진사를 뽑는 소과와 3년마다 고급관리를 선발하는 대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험을 통한 능력 평가 이외에 관리를 등용하는 제도가 있었으니 바로 음서제다. 음서제는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공신 또는 당상관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에 의하지 않고 바로 채용하는 제도다. 그러니까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관리로 뽑히는 것이니 음서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려 시대에는 왕족의 후예나 공신 후손 및 5품 이상의 고관이 그 대상이었고 조선조에는 공신과 3품 이상의 벼슬아치 그리고 사헌부 등에서 청요직을 거친 사람이 음서제라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고려 문종 때는 관직만이 아니라 대대로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인 공음전까지 주어졌다. 부와 관력이 대대로 세습된 것이다. 이로써 부와 권력은 일부 귀족에게만 집중되고 급기야 문벌 귀족이 탄생했다.
  이렇게 누대에 걸쳐 부와 권력이 세습되다보니 일부 고위층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나아가 경제적 부까지 축적해가는 부작용이 빚어졌다.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족당 세력이 정치와 경제를 농단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현대판 음서제’라고 해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곳이 있다. 바로 법조인을 길러내는 로스쿨이다. 교육부는 며칠 전 전국의 모든 로스쿨에 대해 3년 만에 한 번씩 입학전형 운영과 장학금 집행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로스쿨 입시 때 법조계 인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즉 부모나 친척 중에 잘 나가는 법조인이 있을 경우 입학 전형에서 특혜를 받는 식이다. 이는 명백히 음서제와 같은 현상이다. 교육부는 따라서 자기 소개서에 부모 신상을 적어서는 안 되며 면접 때도 집안환경 등을 묻지 않도록 원칙을 세운 바 있다.
  부모나 친척 등의 신분에 따라 자녀들의 신분까지 좌우된다면 이는 능력 사회가 아니라 전 근대적인 신분사회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고위 공직자들이 아들 딸에게 좋은 자리를 챙겨주는 사례가 빈발해왔다. 그런데 교육계에서조차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큰 문제다. 교육부가 이를 엄격히 감시하는 것은 물론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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