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사습

오피니언l승인2017.09.07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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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흔히 국악의 수도라고들 한다. 그 배경에는 전주대사습놀이가 있다. 전주대사습의 역사는 멀리 조선조 영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조 8년 전주에 재인청과 가무대사습청이 설치되면서 처음 대사습이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전주에 사군자정을 짓고 해마다 연례행사로 소리꾼들이 모여 소리를 한 것이다. 당시는 물놀이 등 판소리 이외의 놀이와 기예도 함께 펼쳐졌다. 이후 철종과 고종 대에 이르러 전주대사습은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갔다.
  특히 고종 때 대원군은 전주대사습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동안 안동 김씨 세도에 눌려 불우하게 지내던 그는 전주의 백 이방의 집에서 숨어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대원군은 명창 송흥록의 춘향가를 객석에서 들었다고 한다.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집권 후 전라감사에 영을 내려 단오절 관의 주관으로 판소리 경창대회를 열도록 했다. 또 여기서 장원을 한 명창은 서울로 불러들여 어전에서 소리를 하도록 했다. 그 명창은 벼슬까지 제수 받고 국창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게 됐다.
  행사는 전라감영과 전주부의 통인청이 주관했다. 이들 두 기관은 경쟁적으로 뛰어난 명창을 찾아 나섰다. 많은 돈과 극진한 대우를 통해 확보한 명창들을 앞세워 자존심 싸움을 벌인 것이다. 소리꾼들은 자연스레 전주에서 소리를 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 서울 등 전국 각지의 소리꾼들은 대사습 참여를 평생 소원으로 삼을 정도였다.
  꾸준히 이어지던 전주대사습은 일제 강점기 일시 중단됐다. 하지만 1975년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부활됐다. 처음에는 판소리와 농악, 무용, 시조, 궁도 등 5개 부문에 걸쳐 열렸지만 점차 확대돼 오늘날에는 10개 분야가 됐다.
  제43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8일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서 막을 올렸다. 판소리 명창 등 모두 10개 부문별로 경연이 펼쳐진다. 올 대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심사 비리와 이사진 간 갈등 등으로 파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심사위원추천위와 선정위 구성, 심사진에서 스승이나 친인척 등 연고자 배제, 청중 평가단 운영 등 공정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전주대사습은 300여년 역사를 품은 국악 최고의 큰 잔치다. 하마터면 명맥이 끊길 뻔한 판소리의 명맥을 이어온 귀중한 유산이다. 이런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간 운영 과정에 적잖은 파행이 있었음은 유감스런 대목이다. 심사 공정성 시비 이외에도 젊은층 외면 등 여러 가지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게 사실이다. 주최 측은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국악을 부흥하는 첨병으로서 전주대사습의 재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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