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방어시설 갖춘 요새··· 왕궁 아닌 '피난성'

<전북백제 후백제 재발견> 승암산 북쪽 골짜기 위치 중앙부에 국내 최대 규모 길이 84.2m 대형 건물터 자리 온돌시설 없어 거주 부적합 전주성 명의 막새기와 출토 전라일보l승인2017.09.14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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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전주에 천도한 견훤은 왕궁을 어디에 세웠을까. 오랜 관심사임에도 해답을 찾진 못했으나 동고산성설을 비롯해 물왕멀설, 전라감영설, 인봉리설 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 중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동고산성이다. 1990년부터 꾸준히, 수차례 발굴조사해 전모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산꼭대기 중앙부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길이 84.2m의 대형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승암산 북쪽 골짜기 풍수지리상 거주하기에 적합지 않을 뿐 아니라 겨울철 보온을 위한 온돌시설이 발견되지 않고 식생활 유물도 적은 등 왕궁보다는 피난성이었다는 학설이 나왔다. 왕궁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의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전주 동고산성이 지닌 가치와 의미는 크다. 후백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인 ‘동고산성’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대성동이 접하는 산줄기를 따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에는 북&#8231;남&#8231;동쪽 익성(성벽에서 새 날개 모양으로 돌출된 것)이 있고 성문은 동서남문 4곳인 걸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는 주 건물터를 비롯해 약 13개소가 알려져 있으며 주 건물터에서는 전주성 명의 막새기와가 출토, 주 건물터로 명명됐으며 동고산성이 천년고도 전주성임을 입증했다.
  한 나라 백성과 영토를 적에게 보호하는 성벽은 견고하게 쌓아야 할 거고 동고산성 성벽 쌓기에서도 성벽의 무너짐을 방지하는 다양한 방식이 확인됐다. 성벽을 성 안 쪽 높은 지대보다 낮은 곳에 쌓은 것도 특징이다.
  성 안 중심에는 건물을 짓기 위해 평탄한 대지를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추정 서문터 쪽에는 포도농장이, 그 위 성황사(전주부성을 수호하는 성황신 5위를 모신 사당) 뒤쪽인 동쪽으로는 높은 단 위 대형의 ‘주 건물터’가 존재한다. 전면 22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된 이곳은 2층 이상의 외관을 가진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왕이 살고 나랏일을 하는 궁전은 평지에 세우는 게 일반적이고 성벽 위 건물들처럼
사람이 머물며 식생활 할 수 있는 시설이 없기 때문에 주 건물터를 궁전으로 생각하기에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전주성(全州城) 명의 수막새와 암막새 기사와 출토됐다.   
  명문 좌우 성곽을 상징하는 문양 안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당시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고산성 산줄기 중 남쪽에는 정상부를 평탄하게 깎아 만든 곳에 주춧돌이 곳곳에 남겨져 있으며 건물터다. 제7건물터, 제11건물터, 제5-1,2건물터는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숙식하거나 무기 및 군용 물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 
  성벽 가까이 건물은 적에게 쉽게 노출되고 불화살 같은 적의 공격으로 화재가 날 가능성이 커서다. 성벽 바로 안쪽에 건물들을 줄지어 배치한데다 건물 내무 보온을 위한 온돌이나 고래(열을 전달하기 위한 통로의 벽)가 없고 조리할 수 있는 그릇과 화덕, 부뚜막이 없는 걸로 미뤄볼 때 동고산성은 사람들이 항시 머물러 있는 곳이 아니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전쟁이 일어날 시 대피해 적들이 돌아가길 기다리던 피난성이라는 것.
  성을 지키기 위한 시설 중 확인되는 건 익성과 토루(성벽 위 적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순찰하기 위한 통로)다. 성 안팎을 출입하는 통로 성문으로는 북문터와 동문터가 있으며 서문과 남문이 추정되고 있다.
  방어시설인 만큼 성 안 많은 이들이 대피했을 시를 대비, 준비해야 할 게 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게 필수적인 물과 식량이다. 동고산성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집수시설은 동그란 것과 네모난 것 2개소가 확인됐다.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동고산성은 후백제의 수도 전주성이라는 도성의 일부로 전쟁 시 피난할 수 있는 요새라는 주장이 있다.
  이밖에 물왕멀설이 있다. 고토성을 왕궁으로 보고 그 일대가 당시 주요 건물과 취락이 자리하는 시가지였을 걸로 추정했다. 사각형의 커다란 석재와 천석 1만 여개와 후백제 왕궁이 있었다는 구전도 힘을 싣고 있다.
  옛 전북도청을 왕궁으로 보는 전라감영설은 통일신라 시대 유구로 부석시설, 담장시설, 배수로 등이 확인됨에 따라 전라감영지가 통일신라 시대에도 이 지역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백제 재건을 위해 전주를 도읍 삼은 견훤이 통일신라 9주 중 하나인 완산주의 주치로 어느 정도 발달된 전라감영지에 왕궁을 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들이 있다.
  인봉리설의 경우 영상정보진흥원 동쪽에 남아있는 토축이 궁성 서쪽 성벽으로 추정되고 도시 개발로 본래 지형이 대부분 훼손됐지만 동·남·북 성벽의 경우 기린봉 산자락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자연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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