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전부터 전 직원을 상대로 일대일 면담을 실시해오고 있다. 30분 이상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마지막에 급습하듯 던지는 질문이 있으니, 바로 ‘일이 재미있나요?’이다.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대답을 못하는 직원, 주저하며 억지로 답하는 직원, 확신에 차서 긍정하는 직원 등.
  일대일 면담의 결론은 이 질문 하나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긍정적 대답이 서슴없이 나오면 만사 OK이고, 머뭇거리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왜 ‘일이 재미있나요?’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지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문제의 핵심을 찌르니까. 왜 재미가 핵심인지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필자는 인생살이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갖가지 감정 가운데 가장 높은 경지가 재미라고 본다. 재미는 몰입과 열정 없이는 생길 수 없는 차원 높은 행복감이다. 단언컨대, 재미없는 삶은 힘들고 지겨운 것이다.
   재미있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필요조건을 갖춰야 한다. ‘의미’와 ‘새로움’이 그것이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으면 재미를 느낄 리 만무하다. 의미 없는 행동에서 흥미는 결코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만남, 의미 없는 소리, 의미 없는 경쟁에서 얻는 것은 환멸뿐이다. 따라서 의미는 재미와 보람을 길어낼 수 있는 우물이다.
  또 하나의 핵심요소는 새로움이다. 우리가 새로움이 배제된 기계적인 행위를 반복할 때 아무 재미를 느낄 수 없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권태만 쌓일 뿐이다. 노부부가 종일 마주 앉아 치는 고스톱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손을 잘라도 못 끊는다는 도박의 중독성도 이 경우 무용지물이다. 재미는 고사하고 싸움의 빌미가 될 뿐이니, 싸움은 인격적 결함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치유할 수 없는 권태에서 비롯된다.
  차라리 그들이 노령을 떨치고 용기 내서 구청 문화회관의 댄스스포츠 반에 등록한다면 재미를 느낄 공산이 크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흥분이 가슴 설레게 할 터이니.    
  의미와 새로움은 물자체에 내재해 있기 보다는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 빚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메뉴로 영업하는 식당엔 의미와 새로움이 없어야 이치에 맞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요리를 창조한다는 의미, 어제와 다른 고객을 모신다는 새로움이 재미를 줄 수 있다. 설사 매일 오는 단골이라 할지라도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는 다른 손님이다. 하루 더 늙었고, 기분도 어제와 사뭇 다르며, 새로운 가치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일신 우 일신’하여 새로운 의미와 고객을 창출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나 자신이 재미의 결핍으로 인해 허무와 우울의 수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재미있게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생의 다양한 요소들이 큰 결함 없이 조화롭게 갖춰지지 않으면 재미의 느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건강, 가정, 경제, 직장 가운데 어느 하나만 탈나도 재미는 천리만리 도망가 버린다. 다시 말해 재미는 인생의 연금술이며, 의미와 새로움을 자양분으로 몰입상태에서 생장하는 까다로운 생물이다.
  2500년 전 공자는 지(知, 앎), 호(好, 좋아함), 낙(樂, 즐김)의 서열을 세웠다. 재미는 바로 낙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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