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길 전북대 스포츠과학과 강의전담교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뛰어 넘는 교육적 철학을 지닌 학자로 평가 받는다. 그러한 이유는 그의 스승들은 인간을 교육하고 사회화시키는 것을 포함한 윤리적 삶은 오로지 지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지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의적 영역과 심동적 영역까지 모두 인간의 실생활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관은 오늘날 교육 및 사회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전인교육의 근간이 되어주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인간중심 철학의 핵심 명제를 얘기하였다. 중세시대의 신 중심 사회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비판하며 탄생한 이 명제는 신 중심 사회의 종언을 고한다. 인간의 삶이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도덕성은 신이 주신 면죄부를 통해 해결되는 것 또한 절대 아니라는 점에서 중세사회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아마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싶은 몸부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분명한 정답은 존재치 않겠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매너를 중시하고 스스로의 양심을 지켜나가는 윤리적인 삶일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사리사욕은 증대되고 이로 인한 갈등은 심화되어 간다. 지나친 갈등은 비인간화로 나타나고 심화된 경쟁을 양상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최근 우리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켰던 부산지역 중학교 여학생들의 집단 린치(Lynch) 사건이 바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다시 근대로 돌아와서, 비판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이러한 비인간화의 문제를 이미 예언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는 저서에서 ‘정언명령’을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정언명령이란 인간의 도덕성은 가언적이고 조건적으로 자신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닌, 조건 없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 정언명령이 의미 있는 것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성공을 위해 모든 과정을 수단화하는데 있다. 예컨대 취업이나 좋은 학교로의 진학을 목적으로 봉사활동과 그 시수를 채우고 있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나 성공하고 싶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쟁자를 넘어서라는 기성세대들의 일련의 가르침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즉 성공이라는 가치관이 목적이 되어버리고 윤리적 삶은 수단이 되어 버린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나와 나의 자녀들을 경쟁하는 기계로 만드는 것보다 도덕성 및 선의지를 확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윤리의식의 실천은 장기적으로 국가 및 사회발전과 개인의 자아실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그 보편적 진리를 우리는 이제 깨우쳐야 할 때이다. 또한 민주적 절차를 따르는 정신, 규범을 지키는 정신 그리고 생명의 가치 및 존중과 같은 윤리가 우리사회 속에서 쉽게 발현될 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 되는 것이다.
과거 철학자들이 열과 성을 다하고 때론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신 중심사회를 배격하고 그토록 원했던 인간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던 그 이유는 세상의 중심에 인간을 담고 싶었을 것이며 그러한 세상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굳건한 믿음에서 기초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비인간화된 현상들은 윤리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며 인간다운 삶으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저 하늘에 별이 빛나고, 내 가슴엔 양심이 빛난다.”는 이마누엘 칸트에 그 보석 같은 얘기가 오늘따라 애잔하게 다가오며 이러한 인간의 윤리적 사고 및 행동과 같은 거룩한 능력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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