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쟈오지홍(曺志洪) 중국토양비료학회장이 농촌진흥청 호남농업시험장을 방문했다. 당시 새만금 간척사업은 극심한 찬반논쟁에 휩쓸리고 있었다. 농업과학자 시각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의 발전방안을 알아보고자 쟈오 회장을 새만금 전시장과 배수문 공사현장으로 안내했다. 쟈오 회장은 중국 동해안 일대에는 황하와 양자강에서 흘러나온 토사가 바다를 메우고 있으며, 발해만도 200년이 지나면 메꾸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바다에 토사가 유입되면 지표면이 높아져서 간석지로 바뀌고 선박의 접안이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간석지 위에 하역작업용 도로를 내고, 간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 모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해 12월, 베이징 방문 길에 입수한 지도에서 중국 간척지를 확인했다. 양자강의 토사가 제주도까지 유입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중국의 간척정보를 통해 간척은 네덜란드나 일본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처럼 거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도 힘쓰는 간척사업이라는 사실은 새만금간척사업의 추진 논리로도 충분했다. 이후 중국의 간척지 정보 수집과 활용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정부차원에서 중국간척지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2002년 7월, 2주간 일정으로 농촌진흥청의 연구정책, 식물환경, 토양조사, 식물생태 전문가와 농어촌공사의 토지이용, 기반설계 분야의 전문가 6명이 중국 산동성의 염해지와 강소성의 간척지를 조사했다. 당시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았던 중국이었지만 염생식물원을 조성했다. 또한, 다양한 깊이의 간선(幹線)과 지선(支線) 배수로를 설치해 지하수위를 낮춰 재염화 방지와 밭작물 재배 기반을 조성했다. 밭 주변에 방풍림을 심어 증발에 의한 지표면의 염류집적을 막고, 평탄지의 일부 흙을 파 올려서 돋운 곳에서는 밭작물을 재배하고 파낸 곳은 소형 저류지를 만들어 수산물 양식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45만 ha규모의 습지생태공원을 조성해 학류(鶴類)연구소를 운영하고, 멸종위기의 Milu(사슴의 일종) 자연서식지를 조성했다. 이 같은 중국의 경제성은 물론 환경생태계 보전을 고려한 다양한 간척지 이용 실태를 보면서 벼 중심의 우리나라 간척지 이용에 대한 개선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나라 간척지 농업연구에 대한 구심력이 약해졌다. 더구나 간척지의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산간척지에서는 토양의 재염화로 인한 용수부족 문제가 심각했으며, 새만금간척지에서는 비산먼지의 발생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만금 간척지가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다. 간척지의 사회문제해결에 관련 전문가들의 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후보시절 간척지농업연구소 설치를 지역 공약사항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간척지는 물 부족이나 비산먼지처럼 기후재해에 매우 취약한 곳이다. 이곳을 무대로 기후재해 경감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미래 기후재해에 대해 많은 해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간척지는 토양탄소가 매우 낮아 여기서 농작물이나 수목류를 기른다면 온실가스 감축효과도 얻을 수 있고 녹색공간위에서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도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의 사회문제 해결과 미래 기후재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간척지 농업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연구 역량 결집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다’는 교훈을 되새겨 보자.

/이덕배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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