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정신의 숲을 채울 구술 기록의 필요성
/함한희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 전북대 교수)
  지난 세기 동안 우리는 격동의 시대를 지냈다. 강대국들의 정치, 군사의 역학관계 속에서 굵직한 사건·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는 유독 국내외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국가사적 입장이 중시되어 왔다. 
  민중의 삶은 언제나 대 소요의 중앙이었으나 그들의 존재와 경험은 홀대받았고 그들의 생경한 목소리를 담는데 소홀했다. 대다수의 역사에서 민중은 변방에서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묵묵히 살아왔다. 전주의 역사 역시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 국가사에 묻혔고, 정작 전주 사람들이 만들어 온 역사적 사건과 시간은 조명되지 못했다.
  이러한 안타까움 마음을 덜어내고자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정신의 숲’ 프로젝트는 그 당위성 측면에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시민들이 소중히 보관해온 기록물과 물증을 시가 수집하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늘어났고, 소장자들로부터 기증받기에 이르렀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이들의 생생한 경험을 구술로 확보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구술기록은 구술자(화자)가 과거 경험을 기억에 의존해 구술한 내용을 면담자(연구자, 청자)가 받아 적은 기록들의 총체다.
  여기에 하나 더, 필자는 사람들의 구술기록이 ‘정신의 숲’에 남게 되기를 고대한다. 자발적으로 참여에 의한 구술기록이 ‘정신의 숲’ 아카이브에 채워지면 이 숲은 더욱 풍요로워 지리라. 시민들의 기억 속 과거를 꺼내서 기록화 한 구술에 문서·물증 등이 뒷받침 되어 함께 간다면 전주 정신의 숲은 그야말로 기록의 보물창고가 될 것이다.  
  이 작업의 중요성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는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소중한 역사의 증인이며, 주체임을 깨닫게 한다. 역사의 객체로만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역사의 주체로 자리바꿈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쓰기의 첫걸음이다.
  둘째는 역사의 주인공들 중 개인의 역사적 생을 마감하는 숫자가 늘고 있어 그들의 경험을 담아 놓는 일이 시급하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그 이후의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간다. 1930·40년대 노년층이 급격히 쇠약하고 있다.   현재 장년층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면 한 시대의 증언이 사라지니, 한시가 급하게 이들의 경험담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 비근한 예로, 필자가 면담을 하고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부고소식을 접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   
  셋째는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증언이나 구술은 대단히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다른 자료에 없는 사실 들을 밝힐 수 있게 된다. 이론, 논리, 그리고 이념을 뛰어 넘는 역사적 진리를 우리 가까운 곳에서 발견하는 희열을 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구술사는 일방통행의 연구가 아니라 상호교류에 바탕을 둔 공동 작업이다. 구술자·면담자가 대면하여 함께 기록하는 과정에는 주의할 점이 많다. 구술자는 객관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이야기를 해야 하며, 면담자는 개인적 견해를 최대한 줄이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공감해야 한다. 또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면담자가 아니면 자칫 이 공동 작업을 그르치게 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정신의 숲’이 앞으로 전주사람들의 경험을 담아내는 소명을 다해야 함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지난하고, 생색나는 일도 아니며, 그 결과는 더더욱 낙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전주정신의 숲’ 프로젝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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