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강무 전북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최근 개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회는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를 8월 29일 영남권을 시작으로 9월 28일 인천까지 전국에서 총 11회 진행하였다. 개헌토론회 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지방분권 개헌 등 지방자치권 강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장하는 가운데, 지역 맞춤형 개헌 주장도 있다. 세종특별자치시가 세종시를 헌법에 수도로 명시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농생명 수도 전북은 지역맞춤형 헌법으로 농업헌법 만들기에 앞장설 것을 필자는 제안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전북을 농생명산업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국정과제로 채택하였다. 이를 위해 익산(식품), 김제(종자, ICT농기계), 정읍(미생물), 새만금(첨단농업) 등 5대 농생명클러스터를 조성하여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마트 농생명 밸리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미 전북 혁신도시에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 한국농수산대학, 한국식품연구원 등 농업관련 주요기관이 포진되어 있다. 즉, 전북은 자타가 인정할만한 농생명 수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 현실은 암담하다. 국토의 80%이상이 농지와 산지임에도 2015년 12월 1일 기준 농가 인구는 5%에 불과하고, 이마저 농업 경영주 53%가 65세 이상 고령화된 노인이다. 농가소득은 연 3700만원이나 이 중 농업소득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농업소득활동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 농업ㆍ농촌은 인구감소, 고령화 및 양극화 등으로 어려운 여건이 지속되고 있으며, FTA 체결 확대 등 전면적인 개방화, 기후변화 등의 환경 변화는 농업ㆍ농촌의 미래 전망에 위기감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제는 농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업은 살충제 계란파동에서 보듯이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 농지의 환경기능, 천연자원의 보존 및 전원지역의 유지 기능, 지역 분산적 균형발전 기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마지막 일자리 창출 기능 등 다양한 가치와 역할이 존재한다. 이러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역할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헌법에 담겨져서 국가의 농업정책을 유도하는 것만이 농촌과 농업을 살릴 수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3/4이 산지인 스위스는 헌법에 농업에 관한 사항을 아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21세기 가장 선진적이고 모범적 헌법인 스위스 헌법은 우리나라의 개헌논의 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입법례이다.
스위스헌법 제104조(농업)에서 "연방은 농업이 지속가능하고 시장 지향적 생산 정책을 통하여 국민에 대한 안정적 식량 공급, 천연자원의 보존 및 전원지역의 유지, 지역 분산적인 인구분포 등 사항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기여를 하도록 보장한다(제1항), 연방은 농업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자조 조치에 대한 보완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자유 경제의 원칙에서 벗어나 농민의 토지경작을 지원한다(제2항)"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동조 제3항에서 "연방은 농업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조치를 강구한다. 연방은 특히 다음과 같은 권한과 임무를 가진다. a) 연방은 농민이 농업활동에 대한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환경 보호의 요건을 충족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농민의 소득을 보전해 준다. b) 연방은 경제적으로 유익한 장려책을 통하여 자연친화적인 환경 및 가축에 우호적인 생산법을 장려한다. c) 연방은 식료품의 원산지, 품질, 제조방법 및 가공공정의 표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d) 연방은 비료, 화학물질 및 기타 첨가물의 남용으로 인한 환경의 파괴를 예방한다. e) 연방은 그 재량에 따라 농업 연구, 지도 및 교육을 장려하고 투자를 지원할 수 있다. f) 연방은 그 재량에 따라 농촌지역의 토지소유를 안정화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항에서 "연방은 이를 위하여 특별 배정된 농업예산 및 연방의 일반 재원을 투자한다"고 매우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스위스헌법과 같이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여야 한다. 우리의 농업과 농촌이 환경농업과 전원도시로 자리 잡고 인간이 쾌적하게 정주하면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터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헌법적 토대를 새 헌법에 담아야 한다. 농생명의 수도답게 전북의 공공기관, 국회의원, 지방의원, 농업단체 등이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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