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0년부터 936년까지 37년간 후백제의 왕도(王都·왕궁이 있는 도시) 및 도읍지(都邑地·한 나라의 수도)로서 후삼국시대 격동의 중심지이자 찬란한 역사·문화를 꽃 피웠던 전주.
하지만 이 같은 후백제의 영광은 왕도였던 전주에서 조차 재조명받지 못했고, 지역 주민들의 구전을 통해서만 궁궐이나 성곽, 분묘 유적 등이 거론돼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아시아 문화심장터’ 핵심 공간 조성을 추진 중인 전주시가 지난 1000년 이상 역사에서 잊혀온 후백제 역사문화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딛으며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나선다.
시는 후백제의 왕성 및 도성으로 추정되는 노송동 등 지역 전역에 산재한 후백제 유적을 찾는 정밀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후백제 역사유적에 대한 시굴 및 발굴조사를 추진한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를 위해 시는 왕성으로 알려진 물왕멀 일원, 도성으로 추정되는 동고산성과 남고산성, 오목대 등 약 1653만㎡(500만평)을 대상으로 후백제 유적을 찾기 위한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했으며, 분묘·성곽·건축·생산·생활유적 등 34개소를 신규 발굴했다.
특히, 정밀지표조사 결과 후백제의 왕성은 인봉리 일대(3265㎡)로 추정됐으며, 최근 국립전주박물관~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동쪽부분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제방시설 하층에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이 확인돼 왕성과 관련된 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한, 남고산성 내의 추정 행궁지의 경우 후백제 때 사용됐던 초석이나 기단석, 기와들이 수습돼 상당 부분의 유적 존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중저수지 인근 무릉고분군도 인위적으로 만든 대형 분묘형태로 조성돼 있고, 산 정상부에서는 정연하게 배열된 숯(습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 발견됐다.
아울러 생산유적지인 왜망실의 우아동 와요지에서는 수많은 기와편과 가마벽체편 등이 발견됐고, 네모 형태의 전돌편(길이 25cm, 두께 6cm)도 확인돼 후백제 관아시실에 필요한 기와 및 전돌 등을 공급했던 지역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은 “후백제 관련 유역이 전주시 전역에 걸쳐 분포돼 있는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시굴 및 발굴조사를 통해서 조사된 유적의 성격을 밝힐 방침이다”며 “찬란한 문화역사의 보고인 후백제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및 연구 등이 이제나마 전주시의 노력으로 재조명될 수 있게 돼 후손으로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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