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대두됐지만 위기학생을 발굴하고 이들을 치유할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전북 지역도 수개월간 지속된 학교폭력으로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는 동안 비슷한 사건이 지역에서 또다시 벌어지는 등 학교폭력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학교폭력 상담 실태를 살펴 위기대응 시스템이 왜 실패했는지, 향후 나아갈 방향은 어떠한지 두 차례에 걸쳐 살핀다.<편집자주>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전주 여중생 투신사건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건 발생 5개월 전인 지난 3월 해당 학생이 이상 증세를 보여 이때부터 학교를 비롯해 학교폭력 117 상담센터, 정신전문병원 등 사회 전반에 형성된 위기대응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유족 측은 학교에서 주장하는 30여 차례 상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확인 결과 학교 측 상담은 3월 8일부터 8월 22일까지로 모두 16차례 실시됐다. 상담기록은 ‘마음 편안한 편이라 함’, ‘6교시 상담 예정했었는데,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 깜빡 잊어버렸다며 밝게 웃음’과 같이 A학생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통해 심리를 파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기록된 4월 18일의 경우 오후 1시 50분부터 2시 5분까지 15분 동안 상담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날 내용은 A학생이 병원 치료 과정에서 복용한 치료약으로 피로감을 호소해 상담교사는 ‘격려하며 상담 지원함’이라 기록했다. 마지막 상담이 이뤄진 8월 22일에도 점심시간 급식소로 향하던 중 잠시 들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아이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학교의 그 누구도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30회가 넘는 상담에 대해 묻자 학교에선 ‘아이를 격려한 것’, ‘부모와 통화한 것’도 포함된다고 답한다”며 “본질적 원인을 찾기는커녕 매뉴얼을 지키는데 급했다. 형식에 그치는 상담이 의미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해당 학교의 학교폭력 상담 문제는 비단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상담’에 그치지 않고 있다. 학교 관계자와 복수의 학생에 따르면, 상담실은 학생들의 청소구역으로 분류돼 학생들이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다. 다른 학교의 경우 가·피해자 신상 유출 등 2차 피해 우려가 높아 상담실 출입은 청소시간을 비롯해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5년 전인 2012년 같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로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됐던 B학생(당시 14)도 상담 과정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B학생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흡사한 모습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 집단 따돌림 피해자였던 B학생은 학교와 상담센터,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동안 더 큰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과 관계가 없는 B학생의 가정사를 이유로 가정문제와 사회성 결여 등 사안의 원인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B학생은 “학교폭력이 있은 뒤 상담을 받았지만 오히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담 수준도 TV나 인터넷 등에서 익히 알려진 수준으로 실질적인 도움은 없었다”며 “엄마와 함께 상영 중인 영화를 관람하라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지금도 의문이다”고 말했다./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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