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전북도가 전북몫 찾기에 이어 전북자존의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새정부 들어 전북인사들의 중앙진출이 두드러지고 세계 잼버리대회 새만금 유치가 성공적으로 되면서 이런 전북도의 표방이 더 힘을 받는 것 같다.
전북은 이제 호남인으로서 정체성도 가져야하지만 전북인으로서 정체성도 인지해야 한다. 전북과 전남이 분도된 지 올해로 121년째가 된다. 조선시대에 전라도 하면 전주가 그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광주를 대표 도시로 떠 올린다.
전북과 전남은 역사를 같이한 한뿌리로 대승적 차원에서 하나의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서는  다름이 있고 또 각자 찾아야 할 몫이 있다. 전북몫 찾기가 중앙을 대상으로 한 전국적인 것이겠지만, 호남만을 놓고 보아도 그 울림은 크다. 
전북자존은 더 아픈 이야기이다. 전북은 산업화로 이행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북인의 자존감도 꺾이고 무너진 면이 있다. 조선시대 전북이 최고의 풍요를 구가하고 전라감영이 전주에 오백년간 자리할 때 전북인의 자존감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북자존의 시대는 그래서 만시지탄이지만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데 전북에는 이를 뒷받침할 전북학이 없다. 지역학은 그 지역을 연구하여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을 우선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지역민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공동체를 강화해 가는 일이다. 근래 지역학 붐이 일어나는 큰 이유이다.
전북인이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신도 중요하다. 이 둘은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경제 없이 자존감은 거의 불가한 것이지만, 경제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전북도가 표방하는 전북자존에는 지역정신이 없는 것 같다. 전북자존의 지대를 열기 위해서는 전북학이 필요하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지역을 연구하는 지역학이 없는 곳은 전북뿐이다. 강원학도 강원연구원내 강원학센터가 해체되었다가 내년에 다시 문을 연다. 강원도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조례도 만들었다. 엊그제 한국학지역학포럼에 참석하여 들은 이야기이다.
전북학의 부재는 전북자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대 지역의 경쟁 구도하에서 지역학은 지역의 뿌리를 탄탄하게 하여 제분야에 걸쳐 지역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역학은 지역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앞서가기 위한 것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학은 지방자치시대가 갖추어야 하는 필수 덕목이다.
반계 유형원이 실학의 문을 연 부안에 호남실학원이 설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반계가 실학을 일으키고 다산이 실학을 완성한 호남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전북학을 총괄할 필요가 있다.  호남실학원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전북연구원에 전북학센터를 설치하거나 대학과 연계해 전북학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전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도 광역이든 기초든 그 지역사와 지역문화를 연구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런데 그것은 지방자치 이전부터 해온 것이다. 관점이 다르고 비중이 다르다.
전북학을 태동시킨다는 것은 전북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겠다는 것이고, 전북이 자립적 위치에 서서 또 하나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다. 전북학은 전북을 제학문분야에 걸쳐 연구하고 전북의 역사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여 미래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전북학기관은 이를 위한 전북학 연구의 컨트롤타워 내지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지역학이 아직 학문으로서 틀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지역명 뒤에 ‘연구’가 아니고 ‘학이라고 붙인 것은 지역이 독립적 중심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전북학연구기관이 설립되어 전북몫 찾기와 전북자존의 시대를 열어가는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북은 전북만의 강점과 자존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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