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니 찬양하는 소리가 따옥새 떠나갈 듯하고 / 높은 기풍은 오래 머물러 세상을 맑게 하네”
  조선조 정조 때 병조판서를 하던 이가환이 제주 거상이자 여걸인 김만덕(1739-1812)에게 헌정한 시의 한 대목이다. 이가환만이 아니다. 당시 재상이던 체재공은 그녀의 전기인 ‘만덕전’을 직접 써 전달했다. 또 후대인 추사 김정희도 김만덕의 미덕을 기려 ‘은광연세’라는 편액을 김만덕의 양손인 김종주에게 주었다.
  거기에 김정희는 이렇게 헌사를 바쳤다.
  “감종주의 할머니가 흉년에 크게 진휼하자 특별히 임금님의 은총을 입어 금강산에 들어가 구경했다. 여러 선비들이 다 전기를 써주고 시를 읊었으니 이는 고금에 드문 일이다. 김정희는 이 편액을 써 보내고 그 집안을 기리고자 한다”
  이처럼 칭송이 자자했던 김만덕은 누구일까. 그녀는 평민 출신으로 제주도의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자 기생의 수양딸로 들어갔다. 춤과 노래를 배운 그는 이내 기생이 됐지만 제주목사에게 청원해 기적에서 빠졌다. 이후 그녀는 장사에 손을 대 큰돈을 벌었다. 제주도 물품인 약재, 전복, 재목, 갓 등을 육지에 팔고 대신 쌀과 무명 등을 들여와 많은 이문을 남겼다.
  김만덕이 유명하게 된 것은 1794년 제주도에 기근이 들었을 때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산 뒤 이를 백성들에게 나눠준 선행 때문이다. 흉년이 들자 많은 사람이 끼니를 잇지 못해 숨을 거두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김만덕은 그간 번 돈을 모두 들여 곡식 500섬을 샀고 이를 기아에 허덕이던 이들에게 베풀었다.
  22일 제주에서는 김만덕 주간 행사가 열렸다. 조선시대 나눔 실천의 표상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는 각종 행사와 함께 김만덕상 시상식도 있었다. 1980년부터 거행된 이 행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성 제관들에 의해 봉행됐다고 한다. 주요 행사로는 당시 장터 재현과 함께 보부상, 요리 체험과 음식 나눔 행사, 축하 공연 등이 펼쳐졌다. 또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을 비롯한 김만덕 기록이 나오는 고서와 교역물품도 전시됐다.
  김만덕을 두고 흔히 네 가지 한계를 넘어선 여성이라는 말을 한다. 즉 신분의 벽을 돌파했고 남녀 차별과 제주라는 출생지의 한계 그리고 가난한 환경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그녀에 대해 ‘조선의 첫 여성 CEO’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18세기에 21세기의 삶을 살았다는 상찬도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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