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옮기지 못하는 짐승이 무거운 덩치 안에 온갖 말들을 가둬놓고 묻으러 간다.
자신 안에 두지 못한 마음 둘 곳을 짐승에게 의지하여 묻어 보낸다.‘<황유진>
황유진의 다섯 번째 개인전 ‘아무 말도 없이’가 공간시은 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2년전 자신의 네 번째 개인전 ‘그림자의 숲’에서 나무 코끼리 무리가 사는 숲을 통해 ‘’살면서 한 번쯤 들 법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 이 복잡함 속에서 구해줬으면 싶은 마음‘을 표현한 작가는 이번에도 나무 코끼리를 통해 마음을 얘기한다.
“성당에 다니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 졌어요.”
겉모습보다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스스로 전에 비해 ‘순해졌다’고 한다.
전시장 중앙에 있는 작품 ‘흐르고 묻는’은 담아두고 머무르는 대신 흘러가고 묻혀 잊혀지는 마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섬진강 산책 중 물살 위로 솟은 바위들에서 코끼리의 형태를 발견하고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평평하게 잘라낸 나무 판들을 붙이고 다시 조각하는 과정을 통해 코끼리의 형상을 만든다. 이때 독특한 질감의 표면들은 울퉁불퉁하고 어딘가 모난 듯 보인다. 상처처럼 파인 자국들과 군데군데 보이는 그을림이 나무의 옹이와 함께 특유의 표면을 이룬다.
자르고 붙인 나무를 다시 깎고 그을리는 작업 방식이 드러나는 표면들을 통해 관객과 감정의 소통을 시도한다. 현대 사회에서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가 스스로가 작업을 통해 해소했던 다소 어두운 감정들과 그 치유과정을 작품을 통해 공유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코끼리에서 다소 변형된 조각들도 함께 선보이는데, 일부 특징들이 생략되거나 과장되는 틈에서도 여전히 코끼리의 형태가 보인다. 일부 다른 동물들이 연상되는 조각들에서도 작가 특유의 표현들이 드러나는데 여기서도 감정의 공유가 지속되는 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를 마치면 작가는 잠시 숨을 돌린다.
“이제는 은화학교 수업 외에 여타 활동은 잠시 접어두려고 합니다. 박사 논문 준비에 집중하려고 해요. 작업은 계속하지만 소재도 ‘금속’으로 옮겨보려고 합니다.” 
작가는 전북대학교 조소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다.
한편 평면 회화를 중심으로 미술 전시를 선보여온 공간시은은 입체 조형 작품들로만 진행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향후 보다 다양한 기획전과 초대전을 기획할 예정이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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