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전북서부보훈지청장

아직 여름이 가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던 10월 초에 전북서부보훈지청장으로 취임하고 어느덧 겨울이 시작되려는지 찬바람이 불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전북서부지청은 1985년 11월, 내가 공무원으로 처음 시작해서 5년간 근무하며 보훈공직자로서 가치관과 열정을 배웠던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고 여러 보훈가족들을 만날 때 마다 이분들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시로 하게 된다.
며칠 전 우리 전북서부보훈지청에서 고령으로 홀로 사시거나 부부만 살고 있어 이분들을 돌보기 위해 보훈 섬김이가 매주 2회 또는 3회 방문하여 청소, 말벗 등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국가유공자 80여명을 모시고 가까운 임실호국원과 남원 광한루에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거동이 불편함에도 모두들 너무 좋아하시면서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를 바라셨다.
이분들은 모두 내가 32년 전 처음 근무할 당시에는 4.50대 혈기왕성한 장년층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과거 물질적 ‘원호’에서 보상은 더욱 강화하고 ‘정신적 예우’를 더하기 위해 군사원호법을 폐지하고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패러다임을 바꾼 제도전환기였다.
보훈대상은 일제치하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던 독립유공자, 6.25전쟁 및 월남 전쟁에서 희생을 입거나 공헌하신 국가유공자, 4.19혁명과정에서 다치거나 사망한 분들이 중심이었으나
이후 고엽제후유증 및 후유의증환자, 5.18민주유공자, 특수임무유공자 등이 편입되는 등 점차 보훈의 외연이 확대되고 예우도 강화되었다. 그렇지만, 흐르는 세월은 물과 같아서 아무도 막을 수 없는지 어느덧 6.25참전자 등은 최고 고령층이 되어 평균 연령이 86세를 넘어가고, 미처 예우를 받지 못한 채 한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이분들이 장년일 당시 20대였던 나 역시도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흘러간 세월을 붙잡을 수 없지만 다만, 그동안 이분들을 위해 더 노력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익산, 군산, 정읍, 김제, 고창, 부안 등 6개 시·군지역의 보훈대상자를 총괄하는 전북서부보훈지청장으로 부임한 이후 한 달여 남짓 동안 많은 보훈가족을 만나고, 다양한 선양 행사에 참석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전라북도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이석규 애국지사님의 인자하고 따뜻한 모습과 6.25전쟁당시 서부전선에서 전투 중 무릎부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거의 못쓰신 중상이자 이의중 선생님의 밝은 모습 속에서 나라를 되찾고 지켰다는 자부심과 한편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TNT와 수류탄을 들도 돌진하여 장렬히 전사한 故 안영권 하사 추모제, 광복군으로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던 이종희 장군과 원평장터 만세운동의 주역 9인의 애국지사 등을 기리는 추모제례 등 10여 차례의 추모 또는 기념행사에 참여했는데 행사에 참여한 대다수가 고령의 참전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이었으며, 이분들 또한 남다른 자부심과 긍지와 함께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안전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풍잎도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단풍잎 한 잎 한 잎 속에 깃든 자유와 평화는 나라를 위해 공헌하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럼 앞으로 전북서부보훈지청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분들의 명예로운 삶을 보장하고 더불어 이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이 항구적으로 국민속에 기억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어떻게 따뜻하게 펼쳐야 할지에 대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참전유공자의 참전명예수당을 대폭 인상하고, 의료지원 감면율도 확대하는 등 따뜻한 보훈정책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 전북서부보훈지청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별도로 지급하는 참전수당 등이 인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기관?단체와 연계한 보훈가족 위문 및 재가복지 서비스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보훈가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이분들의 어려움을 살펴 한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현장중심’, ‘사람중심’의 따뜻한 보훈을 실천할 계획이다. 우리 국민들도 주변의 보훈가족의 곤란함을 보살피고 지켜주시기를 희망한다.
또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하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나라사랑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다양한 보훈행사에도 적극 참여하여 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모두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우리 전북서부보훈지청과 보훈가족, 시민들의 이런 마음이 하나씩 모여 국가유공자 등이 지켜주신 나라를 더욱 발전시키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며 나아가 우리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이번 연말은 이분들을 기억하고 찾아가 위로하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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