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11월21일. 경제부총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 부도를 인정하면서 IMF 즉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200억 달러를 빌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당시 경제가 어렵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게 사실이다. 당시 정부의 설명으로는 갚아야 할 국가 빚은 150억 달러에 달하는 데 외환보유고는 4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IMF 사태 혹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사실 경제의 붕괴 조짐은 꽤 오래 전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금리는 천정부지로 솟았으며 외환 보유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줄어드는 형편이었다. 1997년 닥친 한보그룹 부도는 그 신호였다.

이런 상황서 정부의 국가 부도 발표가 나오자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다. 우선 주가가 반 토막 났다. 환율도 2배 폭등했으며 굵직한 기업과 대형 금융기관들이 속속 문을 내렸다. 그 여파로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금리가 뛰자 기업들은 아우성이었다. 환율 폭등으로 원자재 값이 오른 것은 그대로 서민 생활 물가로 반영돼 서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뒤늦게 원인 분석이 이어졌다. 직접적인 요인은 해외 금융기관들이 한국경제가 불안해지자 일시에 자금을 회수한 게 화근이었다. 이러다보니 외환보유고는 금방 바닥났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줄곧 고도성장을 해온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이 IMF 사태를 수습하는 데는 무려 4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1년 정부는 IMF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외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 국민들은 IMF 사태가 한국경제 최대 시련기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달 한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57.4%)이 외환 위기가 한국경제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고 답했다. 또 59.7%는 외환 위기가 자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또 39.7%는 본인 혹은 가족이 실직이나 부도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흔히 IMF사태를 놓고 경제주권의 상실 혹은 경제 신탁통치라는 말을 쓴다. 그만큼 굴욕적이고 또 뼈아픈 일이었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지금 외환위기는 완전히 극복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현 경제상황으로 보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외환보유고가 늘고 국가 신용등급이 올랐으며 기업 체질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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