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폭락할 때마다 정부는 쌀 생산조정제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농민들을 압박했다. 수년 째 이 소리를 들어 온 농민들은 정부의 쌀 생산조정제가 완변히 준비된 걸로 인식하고 있었다. 올해 정부의 2017년산 쌀 시장격리에 힘입어 쌀값이 상승한데 따라 각 지역 농민들 사이로 쌀 생산조정제에 일부 동참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달 초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기로 한 2018년도 쌀 생산조정제 세부 시행계획이 한 달 가량 지연되고 있다. 생산조정제 추진을 독려했던 농식품부가 실현 가능성이 없어서 세부 계획을 만들지 않았던지, 아니면 단지 쌀값 폭락에 대한 면피성 제도로 생산조정제를 거론했는지 농민들은 궁금하기만 하다. 
농식품부는 이달 초까지 생산조정제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이달 안에는 세부 시행계획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근 입장을 바꿔 이달 말까지 기본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농민들은 올해 최악의 쌀값 파동은 피했으니 정부가 내놓는 생산조정제를 한 번 들여다 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본계획 확정마저 늦어지자 농민들이 생산조정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이럴 줄 알았다며, 대상 농가와 지원단가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하나 둘이 아닌데 생산조정제만 들먹였다고 지적한다.
실제 농식품부는 아직 벼를 대체할 작물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도 않았다는 게 농민들의 시각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벼 대신 재배할 수 있는 작물로 콩·팥·감자·메밀·사료작물을 제시한 바 있다. 재배기술과 판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인데, 정작 이들의 내년도 종자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점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대체작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콩 종자의 경우 내년 정부보급종 종자는 일부 늘었지만, 생산조정제 면적이 커 실제 농민 다수가 콩 종자를 원할 경우 공급량이 부족해질 게 뻔하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종자알선센터'를 통해 부족한 종자를 해결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느지역에서 어떤 작물 종자를 확보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두번 째 대체작물로 거론되고 있는 조사료의 경우도 봄에 일괄 파종한다고 계산할 때 생산조정제 대상 면적 중 3분지 1의 종자만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남은 기간에 밭작물 재비기술을 보급, 기계 임대, 저장고, 판로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는 수두룩한데, 농식품부가 꿀먹은 벙어리다. 농민들이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게 하려면 정부는 먼저 선도농가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농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 믿음의 증거는 철저한 분석과 준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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