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 3대 민족인권 변호사라면 김병로와 이인, 허헌을 든다. 그 중에서도 가인 김병로(1887-1964)는 단연 돋보이는 법률가다. 그는 독립 운동가이자 법조인, 정치가, 시인이기도 했다. 조선조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의 14대 손인 가인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건국 초와 박정희 정권을 두루 겪으며 한국 현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가인에 얽힌 이야기는 숱하게 많다.
  우선 그는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쟁취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초대 대법원장에 재직할 때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 서민호 의원이 그를 죽이려던 군인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 법원은 정당방위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군인을 죽인 자에게 무죄가 웬 말이냐며 반발했다. 당시 가인은 법원의 판결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며 부당하다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면 될 일 아니냐고 일축했다. 서슬 시퍼런 권력 앞에서 사법부의 본령을 당당히 지켜낸 것이다.
  청렴결백한 성품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검소한 한복 두루마기에 운동화를 신고 활동했다. 또 한 판사가 박봉에 생활고를 호소하자 “나도 죽을 먹으면서 살고 있소. 조금만 더 참고 국민과 함께 고생해봅시다”고 설득했다. 또 가인은 사무실에서 잉크가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물자를 아껴야 한다며 난방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퇴임식에서도 “모든 사법 종사자들에게 굶어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명예롭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인은 이렇게 한국 현대사에서 일제 탄압에 맞서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각을 세우며 법조인으로서 전범을 보여주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가인 김병로’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모두 920쪽에 이르는 이 책은 무려 10년에 걸친 취재 끝에 탄생했다. 책에는 가인의 업적은 물론 인간적인 풍모와 올곧은 성품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한 교수는 “가인은 한국 법 100년사에서 가장 우뚝하고 압도적인 영향을 주신 분”이라며 “우리 법 역사에서 법률가로서 본령을 추구하면서도 인간으로서 바로 선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이 책을 읽으면 일반인도 가인과 같은 삶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만 알아도 우리 인생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인은 모든 법조인의 사표이자 삶 자체로만 해도 거인이었다. 불신과 논쟁으로 얼룩진 작금의 법조계를 돌아보면 가인의 위대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꼭 일독을 해 볼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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