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이 모두 직장인들의 은퇴 시기가 빨라졌음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직장인들은 정년까지 채우고 나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에 불과하며 정년까지 일하는 비율 역시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남녀 평균 기대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긴 지금 이렇게 이른 은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은퇴 증후군이다. 직장이라는 의지처가 없어지면서 극도의 상실감으로 인해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고 질병이 생기기도 하는 현상이다. 은퇴과정의 충격으로 우울감과 무기력증, 감정변화는 물론 소화불량이나 두통 등까지 닥쳐온다. 명함도 사라지고 갈곳이 없어진 소외감과 고립감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기 일쑤다.
  이 증상은 은퇴자 본인에게 국한된 게 아니다. 은퇴남편 증후군이라는 것도 있다. 1990년대 일본에서 나온 용어로 남편의 은퇴로 부인의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면서 신경이 과민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이와 관련된 블랙 유머로 많다. 잘 알려진 삼식이는 집에서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사람을 말하며 한 끼도 안 먹고 밖에서 해결하면 영식님, 한 끼를 먹으면 일식님, 두 끼를 먹으면 두식씨가 된다. 또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정년 미아, 아내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귀찮게 굴면 신발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서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여하튼 은퇴자들은 대부분 자존감의 상실과 함께 건강과 외모의 급격한 변화 등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보험연구원이 얼마 전 ‘은퇴가 건강생활습관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 핵심 내용은 은퇴가 건강생활 습관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정신건강에는 해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패널들에 대해 2008년에서 2014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즉 정기적 운동을 하는 사람 비율이 은퇴 전에는 37%였지만 은퇴 후에는 45%로 8%포인트 높아졌다. 또 흡연은 11%포인트, 음주는 10%포인트 감소했다. 그만큼 신체적 건강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반면 본인의 주관적 정신건강은 매우 좋음을 1, 매우 나쁨을 5로 했을 때 은퇴 전에는 2.67이었던 것이 은퇴 후에는 3.04로 올랐다.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한다.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은퇴는 빨라지는 지금 은퇴 후 건강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절박한 문제다. 은퇴를 피해갈 수는 없지만 준비는 할 수 있다. 아마도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주위 사람을 끌어안는 자세가 은퇴 준비의 첫 걸음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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