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고비를 넘겨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달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했다. 대신 경조사비는 화환을 제외하고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불과 2주 앞서 전원위원회가 같은 내용을 부결시킨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시행령 개정안에는 원료나 재료의 50% 이상이 농축수산물인 경우에도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가 개정 절차를 서둘러야 내년 설에 10만원까지 농축수산물 선물이 가능해진다. 과일이나 꽃 선물세트의 95% 정도가 10만원 미만에 팔리고 있어 이들 농가의 기대감은 매우 크다.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와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45일 정도 걸리는 입법예고 기간 단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일단 과일·화훼 생산농가의 걱정을 덜었으나, 한우와 인삼농가의 우려는 지우질 못했다. 또한 외식업계의 우려도 상존하는 등 이번 시행령 개정안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안을 서둘러 처리한다 해도 70% 이상이 10만원 이상으로 구성되는 한우와 인삼 등의 선물세트가 설 명절에 팔릴지 걱정인 것이다. 오히려 한우농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수입 쇠고기세트에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공식품의 원료 농축산물이 국내산과 외국산 구별 없이 적용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때문에 임시방편의 시행령 개정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우·인삼 농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농가들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아예 제외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9월 김영란법 시행으로 명절 선물세트와 꽃 선물이 사라지고 농가는 매출 감소로 고사 위기로 내몰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축수산업계 생산 감소 보고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은 요원하기만 했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김영란법 시행으로 농축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면, 위축됐던 소비를 되살리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 공직사회 등이 외식을 줄이고, 선물 주고받기를 없애는 등의 분위기 속에서는 죽었던 국내 농축수산물 경기가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우 농가의 지적처럼 '수입산 농축산물 소비만 늘리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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