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후 전북대병원 유방·갑상선외과 교수

보험설계사로 근무 중인 유방암 환자 A씨가 있었다. 추적 검진 중 폐로 전이된 것을 발견해 항암치료를 권했더니 "일을 당장 그만둬야 하나요?" 걱정스럽게 묻는다.
가족 중 안정된 수입이 있는 사람이 본인 뿐이라 회사를 관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돌보아야 할 가정이 있는 많은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 생계 및 외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을 토로한다. 치료에만 집중할 수 없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 해에만 약 57만 명이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이 중 대부분이 A씨와 같은 전이성 유방암 환자다. WHO는 유방암 사망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지금보다 43% 이상 높아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럽종양학학회(European School of Oncology) 산하의 '진행성 유방암 국제연맹(Advanced Breast Cancer Global Alliance)'이 출범했다. 목적은 진행성·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와 생존율을 국제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발표한 <MBC 비전 2025 행동 요구> 국제헌장에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삶의 질, 직장생활에 대한 권리 보호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치료기간이 긴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에게 '삶의 질'은 치료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국내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통해 '생존기간 연장'은 물론 '일상생활의 유지'를 가장 많이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암치료 중 가장 힘들게 느끼는 점에는 환자 대다수가 '항암제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듦'을 함께 꼽았다. 또 이들은 항암치료 중 '활동하기 어려움', '살림을 못함', '직장·사회생활하기 어려움' 등의 일상생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전이성 유방암의 항암치료는 이런 환자들의 치료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병용요법과 단일요법 간 생존기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보고들이 나오면서, 최근 전이성 유방암 가이드라인에서는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 단일요법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증상을 빠르게 호전시킬 수는 있으나, 단일 약제를 순차적으로 투여하는 것에 비해 우월한 치료법 인지는 고려해봐야 한다. 단일요법은 환자의 치료의지와 순응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며 환자들이 바쁜 삶 속에서도 잠시나마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렇게 항암치료제의 독성은 적으면서 생존기간 연장 효과까지 있어, 삶의 기간과 질 모두 유지시켜 줄 수 있는 단일요법 치료제들이 국내에도 소개되고 있다. 아침에 짧은 시간 투약 후 일상생활에 바로 복귀 가능한 치료제가 있는가 하면, 탈모 등 환자들이 불편해하는 부작용을 완화한 신약들도 계속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 유방암 치료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며, 유방암 예방 및 인식 향상 캠페인도 매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 '진행성 유방암 국제연맹'이 출범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전이성·진행성 유방암 환자의 삶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환자들에게도 앞으로의 삶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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