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치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이 노력해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때마다 주변에서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고난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성공을 일구는 일이 없지는 않다. 물론 이런 일은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법시험 합격이었다. 사법시험은 소송대리나 법률 문서 작성 등 법률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법조인을 탄생시키는 제도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판검사나 변호사가 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잡과에 율사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현재의 사법시험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제도가 정착한 것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가 실시한 고등문관시험이 그 시초였다. 조선인이 고급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유일하게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1925년부터 1943년 사이 이 시험에 합격한 조선인이 약 300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사법시험이라는 이름은 1963년부터였다.
  이 시험이 54년만인 지난 해 문을 닫게 됐다. 이미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이 제정되면서 일찌감치 사법시험 폐지가 예고된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마지막 합격자를 내고 이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대해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대 국회 들어 사법시험 존치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이 상정되고 고시생과 대학교수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단체들이 존치운동을 벌였다. 결국 헌법재판소에 사법시험 복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달 22일 헌법재판소가 5대4의 의견으로 사법시험 폐지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법시험은 완전히 사라졌다. 헌재는 “사시 폐지가 사시 준비생들의 직업 선택 자유와 공무 담임권,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개천에서 용이 나는 통로인 사법시험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갔다. 이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학비가 엄청나게 비싼 법학전문대학원을 가야만 하게 됐다.
  수년 전만 해도 눈물겨운 사법시험 합격 수기가 장안의 화제였다. 간난신고 끝에 법조인이 된 스토리들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제는 역사와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하지만 고시생은 물론 법학 교수 등 일각에서는 “사법시험 폐지 합헌결정은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학문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의 명백한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