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배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1988년 노태우 대통령 공약에서 출발한 새만금 사업은 올해 만 30년이 되는 해다. 30년의 세월 속에서 당초 100% 농업용지로 개발되던 새만금 간척사업은 2012년 수립된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비농업용지 70%, 농업용지 30%로 변경됐다. 비농업용지 간척사업은 민간투자자 확보문제가 사업추진을 더디게 한 반면, 농지기금을 활용하는 농업용지 조성사업은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30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새만금 간척사업도 다행히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탄력을 받고 있다. 무술년 새해에는 새만금이 농생명 산업의 메카가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할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문성왕(文聖王)은 장보고를 제거한 뒤 청해진의 유민들을 강제로 벽골군(지금의 김제시)으로 이주시켜 벽골제 보수 공사 등에 동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제시에는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비가 있다. 수리수문학자들에 따르면, 벽골제는 밀물 때 바닷물의 유입을 막아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지금의 금강하구둑과 같은 일종의 방조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산미증산정책의 일환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많은 간척사업이 진행됐다. 조선총독부는 1930년 김제간척출장소를 벽골제에서 서해안방면에 있는 김제시 광활면에 개설해 쌀 증산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일본의 한반도 쌀 수탈량을 증대시키는 전략을 추진했다.

 해방 이후 계화도 간척사업이 완공되면서 1978년 농촌진흥청 계화도출장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간척지농업연구가 시작됐다. 당시 쌀의 자급달성이 국가 목표였기에 간척지에는 논이 조성됐다. 그 결과 간척지 적응 벼 품종 개발과 물·비료·토양개량 기술에 대한 연구가 추진됐다. 간척농지는 해가 거듭될수록 염분이 제거돼 수량이 증가되다가도 가뭄이 심해지면 지하 염분이 다시 올라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곤 한다. 논을 조성하고 물로 염을 씻어내면서 비료를 자주 많이 주면 된다는 비 친환경 농업 기반이 조성된 결과였다.

1980년 극심한 냉해로 인해 흉작을 맞이한 결과로 쌀을 수입했고, 미국의 곡물상들에게 비싼 값을 치르면서 식량자급 문제가 다시 문제화되자 농경지 면적을 확보하고자 새만금 간척사업이 기획되기 시작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공약에서 새만금 사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은 막대한 예산소요와 토지이용계획 변화에 따라 지지부진했었다가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추진동력을 얻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새만금 담수호가 수질오염 논쟁에 휩싸이고, 쌀 생산과잉의 문제가 발생되자 농촌진흥청은 간척지 농업연구를 강화하면서 내외부 협력체로서 간척지농업연구회를 창립했다. 국내외 식량작물·원예작물·토양환경·수리·수문·농업토목·농업정책 전문가들과 토론을 거쳐 신간척지에 필요한 농업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그 결과 바닷물에서 자라는 함초, 나문재 등의 재배기술을 비롯해 이탈리안 라이그래스, 호밀, 기장 등 밭작물 재배기술을 개발했고, 토양관리 정보도 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새만금 농생명용지 중 5공구 1,513ha는 2013년 발주해 완공됐고, 그 사이에 농촌진흥청의 시험연구시설, 산림청의 목재에너지림 조성사업장, 전북도원의 시험포장, 대학의 연구학습포장 등이 조성됐다. 또 일부 출입경작지에는 대규모로 사료작물도 재배되고 있다. 필지당 경지면적도 4ha로 기계화정밀농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이자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몇 해 전 새만금 국제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새만금은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가 실현되는 꿈의 터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 이루어낼 100대 국정과제 세부실천 계획에도 새만금 사업은 포함됐다. 새만금에 순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순풍이 돌풍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 자연 현상이니 만큼 우리 모두 새만금으로 불어오는 순풍으로 기회를 잘 살리고, 돌풍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해 우리나라의 성장판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고 실행하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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