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세워진 남원 ‘관왕묘(關王廟)’를 정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남원시의회 이정린 의원은 13일 열린 제220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신청, 이같이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 관우를 배향한 전각으로,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부터 이 땅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왜군과 격전을 벌일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신병(神兵)이 나타나 명나라 군대를 도와 승리로 이끌게 되었고, 신병을 이끌었던 장수인 관운장의 고마움을 생각해 그를 숭배하는 묘를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남원 관왕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주둔했던 명나라 장수 유정이 자신들의 수호신인 관운장을 모시기 위해 선조 31년(1599년) 남원부 동문 밖에 소상(塑像)과 비(碑)를 세운 것이 시초다. 그 후 숙종 42년(1716년)에 지방 유지 박내정이 성의 동문안에 누각을 지어 소상과 비를 이전하고, 영조 17년(1741년)에 당시 남원부사였던 허린이 왕정동의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

건물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주심포로 가구된 한식 목조 기와집이고 총면적은 83㎡다.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관우를 신으로 숭배하는 민간신앙은 ‘관제신앙(關帝信仰)’이라 일컬어지는데, 관우의 사당이 이처럼 민간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는 관우의 신격이 복합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 관우는 용맹한 장수를 뜻하는 무신(武神) 혹은 전신(戰神), 재물의 신. 문교신(文敎神), 의약(醫藥)의 신이기도 하다.

이같은 이유로 관우는 중국 민간에서 첫손에 꼽히는 숭배대상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도 중국과 대만, 싱가폴 등 아시아에 약 200여곳 이상의 관왕묘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관광객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관왕묘를 찾아가 가정의 안정과 재물이 많이 들어오기를 빌고 있다.

남원의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 세워졌던 관왕묘들과 함께 가장 오래된 관왕묘 중에 하나다.

1597년 명나라 장수 진린과 모국기가 고금도와 성주에 세웠고, 1598년 진인이 한양 숭례문 밖 주둔지에 남관왕묘를, 설호신은 안동 관왕묘를 세웠으며, 1599년에는 만세덕이 가장 규모가 큰 동관왕묘를, 유정이 남원 관왕묘를 창건했다.

이후 고종 때에 이르러서는 전국 각지에 관왕묘 건립이 유행처럼 번져 1897년에는 국가 공인 관왕묘가 10여곳에 이르기도 했다.

남원은 이처럼 유서 깊은 관왕묘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대중에게 공개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좁은 진입로에 들어서면 황량한 건물과 비석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형편이며, 건물내부는 잠겨있어 일반인이 관람하거나 제향조차 할 수 없다.

반면 완도군은 관왕묘를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무사로 바꿨으나 최근에는 충무사 맞은편 지점에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의 동관왕묘도 대대적인 유적정비 사업을 마친 후 일반에게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 의원은 남원 관왕묘도 진입로와 내부 정비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관왕묘가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진입로와 내부 정비를 거쳐 공개하면 국내는 물론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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