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유’를 직역하면 ‘당신과 함께’쯤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위드 유’가 미투(Me Too)와 더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TV나 인터넷은 이미 ‘위드 유’ 운동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이슈들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With You’앞에 해시태그(#)를 달거나 이 문구를 적은 손 사진을 올리는 방법으로 이 운동에 참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터부시 해왔던 사적 고백인 ‘나도요’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너를 지지하고 너와 함께 하겠다’로 화답하면서 또한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의 왜곡된 문화를 바꾸기 위하여 거리로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표상이던 원로 작가에서부터 대한민국 공연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등에게 오랜 세월 ‘한’을 품어왔던 여성들의 미투는 경계가 없다. 화면 속에서 봤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던 스타들의 민낯을 보며 느꼈던 충격은 여성을 떠나 국민들 모두가 경악과 분노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영역에서 누리던 권력과 이 권력에 굴복할 수 없었던 많은 피해자들의 아픔은 단지 미투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투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돈과 권력과 사회적 평판을 쟁취한 자들이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비대칭적 열위에 있던 여성들의 성을 착취한 사건에 대해 불같이 일어난 저항이다. 나쁜 권력에 순종하지 않고 저항해서 바꿔가는 우리 국민의 꼿꼿함이 미투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한 저항에 손을 잡아주는 ‘위드 유’는 우리가 나아갈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투와 위드 유’운동의 결과로 이 사회의 기득권층들이 마치 여자들을 지배하는 특권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일련의 행태들이 얼마만큼은 사라지고 적어도 우리 사회가 한걸음 더 상식과 윤리가 지배하는 바른 인간존중의 사회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 지금 우리사회에 불고 있는 ‘위드 유’운동이 미투를 넘어 점차 사회 전분야로 그 영역이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위드 유’운동의 중심축이 소외된 약자의 문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위에는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의 국가의 복지 시스템으로 모두 해결되지 않는 분야에서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무의탁노인이나 결식아동, 미혼모, 차료비가 부족하여 병원의 치료를 중단해야하는 아픈 사람들이 들들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 하루 이침에 직장을 잃고 경제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한 사람들 등등으로 옮겨가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는 운동으로 확대된다면, 이 사회가 따뜻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우리 주변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깃털만한 주변의 관심으로도 충분히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훌륭한 일들을 해냄으로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이 자란 가난한 환경과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도움을 주게 된 배경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그 누군가들은 그가 초라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을 낭비하며 함부로 살도록 놔두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위드 유’운동을 기회로 우리들도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누구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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