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미래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의 키워드는 변화이다. 미래쇼크에서는 변화의 과정을, 제3의 물결은 변화의 방향을, 권력이동은 변화의 통제를 설파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간 지속된 아날로그시대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정보화 사회로의 급격한 변혁을 거치면서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디지털 컴퓨팅은 50년 가까이, 퍼스널컴퓨팅은 30년, 인터넷은 20년, 스마트폰은 10년 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다.

디지털의 압도적인 우수성은 그전까지의 아날로그를 쓸모없게 만들었고 아날로그 기술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언제부터인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방식, 태도, 양식, 기술 등이 아날로그적 접근이라는 말로 폄훼되기도 했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한 '디지털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인 10대, 20대는, 그들이 태어났을 때 인터넷은 이미 존재했고 세상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은 그들에게 도달해야할 목표도, 반짝이는 신기한 물건도 아닌, 그냥 기본 값에 불과했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은 오히려 아날로그였다.

그들은 아날로그의 비효율성을 탐하게 되었고 약점을 새로운 강점으로 인식하면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디지털기술보다 훨씬 번거롭고 값비쌀지라도 제품이나 서비스를 획득하기를 원하며 그런 경험을 위해 상당한 경비를 지불할 용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보면

# 1.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 나노'와 '셔플'이 소비자들의 외면에 따라 12년 만에 단종 되었다. 반면, 턴테이블의 바늘과 LP판이 내는 잡음이 소비자들의 추억을 끄집어내고, 디지털세대에게는 新商으로 각광 받고 있다. 서태지 LP 한정판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 2. 종이는 디지털 기술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은 최초의 아날로그 기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책 시장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았던 e-book이 30퍼센트 정도의 점유율에서 성장세를 멈췄다. e북의 경험이 종이책이 갖고 있는 공감능력과 사고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원도, 부팅시간도, 동기화도 필요 없는 종이노트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도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표준화된 테크놀로지가 따라올 수 없다는 점이다. 

# 3. 3D에 VR까지 온갖 화려한 첨단기술로 무장한 게임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다마고치, 딱지, 종이인형, 스티커 등 아날로그 장남감과 추억의 옛날과자, 달고나 등을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편리한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감성이 새롭고 신선하며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점령하리라는 예측들이 대세였음에도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영역이 있다는 것은 앞선 사례 외에도 너무 많다.

한 해에 천만 명 이상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의 성공사례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전통 한옥은 디지털 세대에겐 신선함 그 자체이고 완전 새것이었다. 그 곳을 흐르는 실개천과 고풍스런 골목길, 한복, 달고나, 수공예, 서예 등은 새로운 경험들이어서 투우장에서 싸움소가 힘을 비축하고 다음 전투에 대비한다는 의미를 가진 나만의 '카렌시아(querencia 휴식처, 안식처)'가 된 것이다. 

아날로그시대를 이끌어 왔던 전북의 농업과 문화유산 그리고 생태자원이 삼락농정과 토탈관광으로, 이제는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 밸리와 힐링 여행의 1번지로 進化하면서 디지털 세대들의 또 다른 카렌시아로 자리해 가고 있다.

                                             이성수<자동차융합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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