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쌍릉이 백제 왕릉급 무덤으로 확인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익산 쌍릉은 백제 무왕의 묘로 알려져 왔다. 지역에서는 대왕릉은 무왕이 소왕릉은 선화공주가 묻힌 묘라고 추정했지만 무왕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 됐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8월부터 문화재청과 익산시는 정밀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지난 1917년 일제에 의해 약식 발굴이 이뤄진지 100년만에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지역과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인 야쓰이 세이치에 의해 시행된 약식 발굴은 학술적 조사보다 도굴에 가까웠다는 비판도 제기됐었다. 지난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의 ‘익산 쌍릉 일제강점기 자료조사보고서’에서 대왕릉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여성의 치아와 수습된 토기가 신라계 토기로 발표된 이후 대왕릉의 피장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이번 조사는 우선 대왕릉에 대해 실시됐다.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확인됐고 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현실의 규모가 부여 능산리 왕릉군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동하총의 현실보다 더 넓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하총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조사된 사비기 백제의 왕릉급 무덤으로는 처음으로 흙 등을 여러 겹으로 단단히 다지는 판축 기법을 사용하여 봉분을 조성하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추가 발굴조사와 석재, 인골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익산 쌍릉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쌍릉이 왕릉급 무덤으로 밝혀진 만큼 이 묘가 전해오는 대로 백제 무왕의 흔적일 가능성도 높아졌다. 문화재청이 밝힌 바와 같이 추가 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의 조성 과정을 확인한다면 익산이 백제 왕도였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익산 지역에 산재한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쌍릉이 100년만에 발굴조사된다는 사실은 그동안 도내 백제 유적들이 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백제 유적에 대한 정부의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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