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베개

  지호 공예가들은 손이 갈라진다.
  한지 죽을 수도 없이 결대로 찢는다. 찢고 또 찢고, 그렇게 어느 정도 양이 채워지면 이제는 치대야 한다. 그다음에는 차분차분 골격을 만든다. 얇게 한 꺼풀을 바르고 충분히 말려준 뒤 다시 또 한 꺼풀을 바르고, 또 말리고. 원하는 두께의 형태를 만들고 나서는 다시 기름칠을 해주고 만져 주고, 만져 주며 한 작품을 만든다.
  지호작업은 겉멋은 없지만 가장 힘든 한지 공예다.
  20년간 한 눈 팔지 않고 한지공예 한 길을 고수해 온 박갑순이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18일부터 24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인사아트센터 6층)에서 열리는 ‘한지, 꿈을 만들다 Ⅱ’는 지난 1년간 이번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작품들이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 박갑순 공예가

매년 가족이 같이 하던 여행도 잠시 뒤로 미루었다. 하루 칠하고 하루 말리고. 자신과 싸움인 듯 지루할 것 같은 작업 과정도 그에게는 행복으로 느껴졌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순간순간의 고통을 성취감으로 녹여낸 것이다.
  그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생활 용품과 이제는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작품들을 복원했다.
  전북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작품을 복원한 ‘호랑이 베개’. 선비의 오수를 담당했거나 아니면 어린 아이의 낮잠을 위하여 만들어 진 말그라한 모습의 단단한 듯 부드러운 무섭지 않은 베개다.
  어느 고운 규수는 지나는 선비에게 급하게 마시고 탈나지 말라고 맑은 물 담은 조롱박에 꽃잎을 띄워 권했던 공동 우물가에 놓인 각 각 다른 모양의 ‘조롱박들’.
  ‘어린 신부는 가마에서 혼자 동그라니 앉아서 가마꾼들의 헛기침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두근댔을 런지’ 새색시의 부끄러움을 새어나가지 않게 해준 ‘종이요강’.
  외갓집엔 너른 장독대가 있었다. 간장, 고추장이 가득했고 어느 항아리엔 홍시감이 어느 항아리엔 옥수수가 가득 들어 보물 상자들 같았다. 종이로 만든 항아리는 씨앗과 곡물을 보관하였다지. 삭막한 아파트 한 귀퉁이에 만들어 본 나만의 ‘장독대’.
  여기에 쌀 한가마니가 너끈히 들어가는 항아리(채독)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우게 된다.
  박갑순은 “단순하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지호 공예는 손끝이 갈라지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투박하지만 단아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작업의 고통은 나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혜미자 색지장은 “모든 한지공예 중 가장 힘든 지호 작업을 선택해 묵묵히 한 길로 나가는 제자가 사랑스럽다”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박갑순은 현재 (사)한지문화진흥원 이사, 지우 전주전통한지공예연구회 회원, 전국한지공예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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