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

 

춘하추동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중에서 단 하나만 여성명사라고 한다. 과연 사계 중 어느 계절이 여성명사일까? 봄 즉 Spring 만이 여성명사이며, 나머지 여름(Summer), 가을(autumn 또는 fall) 및 겨울(winter)는 남성명사라고 한다. 물론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각 계절을 가리키는 신들의 성과 관련된 서구적 어휘이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법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봄은 여성분들에게 만만치 않은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겨우내 웅크리게 했던 엄동설한의 억압이 풀어지고 해가 길어지면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모처럼 드러난 종아리에 감겨들면, 문득 아련한 추억이 이슬처럼 젖어오면서 어느 먼 곳으로부터 또는 지난 과거로부터인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설렘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 중에서 봄바람이 가장 무섭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그 가뿐한 옷차림을 통해서 이유 없이 설레는 가슴을 달래는가 보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찬란한 듯 포근하며 투명한 듯 화사한 그 어떤 페르몬의 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20?30대 남녀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고한 어느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봄이면 여성의 84%가 신체적 증상에 변화를 느끼고 45. 6%가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이 솟는다고 한다. 물론 예외도 있어, 여성의 17. 6%는 그와 달리 우울함을 느낀다고도 한다. 물론 남성과 비교컨대 여성이 더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이입과 동정심이 더 넉넉하며 기분의 변화에 민감하다 보니까, 바깥 동향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기분의 고양 현상은 인체 호르몬 중 세라토닌의 분비와 연관된다고 하는데, 다만 세라토닌의 과다 분비는 비만을 초래한다고 하니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철에 돌아온다는 속담과 관련하여, 그 며느리가 집 나간 것은 지난 봄철이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봄을 맞는 정서적, 생체적 변화는 자연이 보여주는 물이 오른 나뭇가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린 연녹색 잎이 겨우내 칙칙했던 산길을 생명의 길로 바꿔준다. 손끝에 닿는 촉감은 갓난아이의 손발바닥 같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4월의 기운은 신비함을 넘어 생명에 대한 경의를 저절로 느끼게 한다. 추운 겨울을 넘긴 키 큰 나무들도 이때쯤이면 기운을 차린다. 올 여름 성장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키 큰 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이면 뿌리에서 끌어 올리는 물이 혈맥처럼 위로 치솟는다. 그 소리를 확인하는 우리들의 혈관도 더 힘차게 혈액을 온 몸 구석구석으로 나른다. 역시 봄은 만물을 소생케 한다.
  봄 중에서 특히나 4월은 현대한국사에 있어서 남녀 가릴 것 없이 다사다난하기 그지없는 달이다. 이러한 봄철을 맞이하고 보낼 때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봄맞이에 도취된 채 망연히 보내낼 것이 아니다. 봄은 여성이며 생명이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함께 희생하는 여성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는 계절이다. 봄과 여성에 대한 찬양으로 미투(Me-too)가 과거의 일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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