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강철비’. 지난 4일 전주를 방문한 양우석 감독도 “촬영 당시에는 전쟁을 걱정했는데 남북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달라져 행복하다”고 말한바 있다.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의 효과 가운데 한 가지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19회 영화제에서 북한과 관련 된 영화를 몇 편 발견할 수 있다. 이념이 아닌 돈과 사랑으로 풀어보는 영화다.
▲비행(조성빈 감독)
근수는 탈북과정에서 형과 헤어지고 이제 막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이다. 형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는데 낯선 남한의 현실에도 적응하지 못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절도 전과가 있고 도벽 때문에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살아가는 지혁을 알게 되면서 근수의 삶은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지혁의 부추김으로 지혁과 함께 마약 운반책 일을 하게 된 근수는 마약을 가로채 달아날 궁리를 하자는 지혁의 제안을 받고 곤경에 빠진다. 탈북자들의 삶을 다룬 근래의 한국영화들 가운데 ‘비행’은 가장 어둡고 비참한 버전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범죄 장르 영화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소재를 전하는 듯한 기록 영화적 질감으로 피할 수 없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절망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CGV6 11일 오후 2시.
▲굿비지니스(이학준 감독)
김성은 목사는 유명한 탈북 인권운동가다. 그는 1,000명이 넘는 탈북자를 구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3년 미국에서 ‘북한고아복지법’이 통과되면서 그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북한 고아를 구출한 뒤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는 게 그것이다. 성공하면 국내외 펀딩을 쉽게 받고 유명세를 얻어 부와 명예를 챙길 수 있겠지만 북한 고아를 구출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고 탈북 브로커 여러 명이 교체된다. <굿 비즈니스>는 이념과 명분에 가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바로 ‘돈’이다. 이미 여러 편의 탈북 소재 TV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이학준 감독은 4년여에 걸친 끈질긴 취재로 탈북 비즈니스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조감한다. 돈의 이해관계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생존과 존엄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제시하는 문법이 한 편의 필름 누아르 극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 넘친다. CGV7 9일 오전 11시 GV, CGV6 12일 오후 2시 GV.
▲네이팜(클로드 란츠만 감독)
1958년 다큐멘터리 감독 클로드 란츠만은 유럽 좌파 문화 사절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방문 기간 중 그는 비타민 주사를 놓기 위해 호텔 방에 온 적십자 간호사 김금선을 만난다. 그들의 로맨스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안에서 란츠만은 과거의 여인을 찾기 위해 북으로 간다. 외부와의 소통을 허용하지 않는 체제 안에서 만난 아름다운 간호사와의 한때 혹은 그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여인과의 밀회. ‘네이팜’은 1958년과 2017년의 두 개 트랙으로 구성된다. 흡사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이 짧고 숨 막히는 막후 스토리는 란츠만이 체험한 실화이다. 영화의 전개는 60년 후 그가 다시 북으로 가려했던 진짜 이유를 말해준다. ‘네이팜’은 억압적인 정치 권력의 통제가 이룬 결과들을 보여준다. 많은 이미지가 란츠만의 나레이션과 반향을 일으킨다. 평양과 파리의 집에서 란츠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채로 찍힌 대다수 장면은 뉴스 보도나 선전물을 통해 본 그곳의 현실을 증언한다. CGV2 9일 오후 8시, M10 11일 오전 10시.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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