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분야에서 인문교양의 중요성을 내세운 잡스와 애플의 성공은 인문학 열풍을 불러왔다. 인문계 졸업자는 채용도 잘 하지 않던 대기업들이 앞다퉈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나섰고, 대학에선 인문학과 실용학문을 결합한 학과들이 생겨났다.
  신간 <反기업 인문학>(인물과사상사 펴냄)은 대학에선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는데, TV 방송에선 인문학을 내건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편성되고 서점가에선 날마다 인문학을 표방하는 서적들이 쏟아져 팔리는 모순된 현상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저자는 문화평론가이자 인문사회 작가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는 박민영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인문학을 해부하기 위해 꺼내 든 메스가 '기업 인문학'이다. 기업 인문학은 기업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이다.
  저자는 인문학의 핵심인 비판적 사고를 키우지 않고 도리어 비판 의식을 소거함으로써 현실에 순응하게 하고 주류적 세계관을 반성 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인문학을 이렇게 부른다.
  책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도입된 '학부제'와 이를 확대한 1998년 '모집단위 광역화' 등 학제 개편과 함께 상아탑에 '경쟁', '효율'의 논리가 자리 잡고, 대학문화가 기업문화에 포섭되는 과정을 되새긴다.
  그 결과 대학 내 인문계열 학과들이 밀려나 고사 위기에 처하고, 인문학자들이 경제적으로 학대당하게 된 사정을 설명하며 "인문학은 죽음의 학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해서 생존을 위해 정부와 기업 지원에 목을 매게 된 인문학이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과 질문을 통해 권력과 자본을 견제하던 본래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고, 이윤 창출과 경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성찰하며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앞장서 대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비판 의식이 거세된 인문학은 개인의 교양을 돋보이게 하고 기업에 세련된 이미지를 덧입히는 장식물이 되는 것에 만족하며, 개인의 취업과 승진을 돕고 참신한 상품기획과 마케팅 아이디어로 기업이익을 늘리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
  "인문학은 본래 무용성을 본령으로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은 끊임없이 인문학의 유용성을 묻는다. 그것은 사실상 자본의 증식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고, 그에 복무하라는 요구다.… 인문학은 그에 답하는 대신, '그렇게 묻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356쪽. 1만7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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