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보면 평범한 14폭 병풍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로 아로새겨졌다. 노년에 접어든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 붓으로 써내려간 성경 필사는 젊음 특유의 열정, 뛰어난 재능을 넘어선 사랑과 생명 그 자체다.

윤여선 작가가 22일부터 27일까지 전북교육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성경 필사 전시’를 연다. 96세 생애 첫 전시를 갖는 건 사랑하는 아들, 딸 덕분이다. 자녀들에게 뭘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임을 깨닫고 71살 되던 1993년 펜으로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성경 신약과 구약을 다 쓴 작가는 80년대 시작한 붓글씨로 성경을 써보고 싶었으나 먹을 가는 것, 붓을 사용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함이니라’라는 이사야서 말씀으로 용기를 얻은 뒤 차근차근 써내려갔고 오늘에 이르렀다.

전시에서는 필사 시작부터 현재까지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한 서책, 소품, 병풍, 두루마리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신약전서를 담은 14폭 병풍이 눈길을 끈다. 14폭 병풍은 신약을 노트에 적어서 전체 글자 수와 한 폭당 글자 수를 배정한 다음, 병풍용 한지에 가는 붓으로 쓰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여기에 들어간 글자는 무려 31만 6천 499개. 아흔을 넘긴 여인이 모래알처럼 작고 무수한 글자를 병풍에 빠짐 없이, 흔들림 없이 담았을 뿐 아니라 하루 10시간 이상씩 1년여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윤 작가는 “한 장 한 장 완성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함을 깨달았다.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이것들이 보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은혜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제 출신으로 김제여고와 이화여대 교육학과(교육심리학 전공)를 졸업했다. 이후 한남신학교에서 교육심리학을 강의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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