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제를 모니터링한 문화단체가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전국춘향선발대회’에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여성을 한 남성에게 성적으로 종속시키는 열녀이데올로기로 관광상품화한 것”이라며 “여성혐오문화를 근간으로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남원이 ‘춘향’을 소비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남원시 산내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 달’은 지난 5월 열린 제88회 춘향제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이번 춘향제 시민모니터링은 ‘문화기획 달’이 ‘2018년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 확대 공모사업’에 선정돼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진행한 농촌페미니즘 활동 중 하나다.

모니터링은 춘향제의 부대행사인 ‘전국춘향선발대회’와 ‘신관사또 부임행차’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상설 문화관광프로그램으로 지정된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4~10월까지 매주 주말 광한루원에서 펼쳐지는 공연으로, 춘향가의 ‘기생점고’를 극화한 퓨전마당극이다. 새로 부임한 변사또 앞에서 명을 받은 호방이 기생을 한 사람씩 호명하고 선을 보이는 장면을 마당극으로 구성했다.

‘문화기획 달’은 이 ‘기생점고’의 진행방식이 ‘전국춘향선발대회’와 그대로 겹쳐진다고 했다.

춘향선발대회는 춘향후보들의 등장-부채춤 공연-자기소개-댄스무대-장기자랑-심층질문-최종선발로 이어지는데, 사회자가 춘향후보들을 차례대로 호명하면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장기를 선보이는 과정이 ‘기생점고’와 판박이라는 설명이다. ‘기생점고’ 대목을 미인대회 형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

특히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는 ‘춘향의 지고지순한 마음’, ‘마음 따뜻한 아가씨’, ‘기분 좋게 만드는 눈웃음’ 등의 표현이 나오고, 춘향후보들은 ‘이몽룡의 하나뿐인 춘향’, ‘이몽룡과 변사또를 매료시킬 춘향’, ‘오늘밤, 제 이름 불러주실 거죠?’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한다. 또한 춘향후보들은 단아한 한복을 입고 자기소개를 한 뒤, 사회자의 진행멘트대로 ‘깜짝 놀랄만한 반전매력’을 드러내는 섹시한 의상을 입고 걸그룹 댄스를 선보인다.

춘향의 자질을 점검하는 심층질문 순서에는 ‘얼굴이 못생긴 춘향이 이도령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이도령이 정말 거지꼴로 돌아온다면?’ ‘변사또가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다면?’ 등등의 질문이 던져지고, ‘지조와 절개’, ‘변치 않을 사랑’을 약조하는 춘향후보들의 답변이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결국 ‘전국춘향선발대회’가 표방하는 춘향은 남자들이 원하는 개념녀, 정숙하게 가리고 섹시하게 벗는 여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화기획 달’은 또 “춘향을 사랑의 아이콘으로 설정하고 지조와 절개를 지킨 열녀 이미지로 국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화려하고 수준 높은 국악 및 현대적인 공연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오감을 만족시켰지만, 그 이면에 여성혐오문화를 근간으로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춘향선발대회’와 ‘기생점고’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면서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장이 됐다는 설명이다.

문화기획 달 관계자는 “‘전국춘향선발대회’와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여성을 한 남성에게 성적으로 종속시키는 열녀이데올로기와 남성의 성적욕망을 허용하는 기녀제도라는 전근대적인 가치를 남원의 지역문화로 둔갑시켜 관광상품과 대중의 유희거리로 만들었다”며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남원이 춘향을 소비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