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신흥동 절골길의 시간이 한 장의 벽에 아로새겨졌다.

11일부터 20일까지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지역읽기 프로그램 결과전 ‘어제, 군산-한 장의 벽’을 여는 구샛별 작가의 연작물이다. 이는 올해 여인숙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 3개월 간 군산에 머물면서 몰라보게 자란 신흥동 절골길에의 이해와 애정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 부유한 일본인들이 장미동, 월명동, 신흥동 같은 평지에 주로 살다 보니 바다 부두노동자인 조선인들은 바다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비탈에 판잣집이나 천막집,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과거 달동네 주변은 군대문화유산의 거리가 되고 많은 관광객들을 이끌고 있지만 절골길에는 당시 군산 사람들의 삶이 오롯하다. 구샛별 작가는 지역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배웠는데 절골길의 흔적을 무너진 벽에서 찾았다.

작은 암자들이 많던 과거부터 달동네를 형성한 일제강점기, 도시재생에 따라 경관이 해체되는 오늘날까지…모든 걸 지켜보고 온몸으로 끌어안은 게 벽이라는 이유에서다.

작가는 철거 당시 빈집들이 부서지고 벗겨진 채로 벽체만 간신히 남아있는 등 비일상적이고 모호한 풍경을 밑바탕 삼고 물질을 비물질로, 구체를 추상으로 풀어낸다. 신비롭지만 사실에 발 디딘 작품은 절골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완벽하게 실패한 허구의 세계를 말하고자 동물이 없는 동물원을 담은 ‘blue/gray scenery(2014년~2017년)’ 연작을 선보였다. 현재 한예종 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작가와 만날 수 있는 소소한 대화는 15일 오후 3시다. 063-471-1993./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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