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유례없는 더위 때문에 휴가 갈 엄두조차 안 난다고들 난리다. 냉방 잘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책을 뒤적이다 짬짬이 주변 맛 집을 찾아 식탐을 해보는 것도 현명한 피서법일 듯하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미국의 한 심리 컨설턴트가 쓴 책 가운데 납량에 적합한 대목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주로 미국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가상실험을 실시한다. 먼저 눈앞에 쌍둥이 마천루가 솟는다. 10m 가량 떨어진 100층 높이의 두 빌딩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한쪽 빌딩 옥상에 올라간다. 거기엔 두 건물을 잇는 너비 30㎝, 두께 10㎝의 널빤지가 가설되어 있다. 낮은 데서라면 삼척동자라도 그 위를 편안히 왕래할만한 넓이다. 그러나 100층 높이에 걸쳐놨으니 심리적 중압감이 장난 아니다. 이 널빤지 위를 걸어 다른 쪽 건물로 건너가는 게 당신에게 주어진 과제다. 생사가 달린 모험인 만큼 공짜로 시킬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대가로 강한 인센티브를 제시한다.
  먼저 돈이다. 1억 원을 걸었더니 지원자가 없다. 거액 연봉자들이어서 그럴까? 판돈을 10억, 100억으로 올려 봐도 별 소용없다. 1천억쯤 걸면 내 한 몸 바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사람이 혹시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결론 내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돈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건너편 옥상에 놓인 두 번째 미끼는 지위다. 사장 승진,  장관 임명 등을 내세웠지만 다들 손사래 친다. 행여 대통령 시켜준다면 손드는 이가 나올까? 또 하나의 결론, (정상적) 인간은 자리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세 번째로 반대편 건물에 가족을 놓았다. 저쪽 건물에서 불이 나 자녀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 상정한다. 그랬더니 백이면 백 기꺼이 목숨 걸고 맞은 편 건물로 건너가겠단다. 가족은, 특히 자녀는, 내 목숨과 바꿀 가치가 있다는 증거다. (배우자의 경우, 부부간 애증에 따라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비정한 사실을 첨언한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목숨 거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목숨 걸만한 가치를 찾도록 돕는 것이 저자의 컨설팅 목표이다. 건너 편 옥상에 무엇이 있다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사생결단하면서 이를 추구할 것인가? 그걸 찾는 순간 생의 약동은 시작된다. 찾길 외면하거나 못 찾게 되면, 그저 범용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비범한 생과 평범한 생의 갈림길은 바로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가우디, 베토벤, 이순신 같은 이들은 각기 인류애, 건축, 음악, 구국에서 그 길을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과 고독 속에서도 삶을 살 진정한 이유와 추동력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더위에 효율, 실적 같은 세속적 목표를 잠시 잊고 삶의 가치라는 인문적 화두에 눈떠보자. 단시간 내 답을 얻긴 어렵겠지만 이제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도의 고통을 즐겨보자.  예술이나 신앙, 사회운동 같은 거창한 일들만 가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만일 평소의 자기 직업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길이 최선이다. 이 여름, 폭염이 선사하는 게으름의 특권을 십분 활용하여 발견의 기쁨을 누려보자. 
  대다수의 인간비극은 가치의 부재 내지 전도가 초래한다. 분수를 잃고 가치의 무게중심을 재보와 권세로 옮겼다가 말년에 ‘폭망’한 자들이 사해에 넘친다. 진정한 가치를 찾고 초심을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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