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6기와 7기 전라북도는 전북에서 아시아 농생명 산업 벨트를 추진하고 있다. 마침 전북혁신도시로 농촌진흥청과 산하기관, 식품연구소가 이전하고,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 김제 민간육종단지 및 농기계사업소, 정읍 방사선 연구소, 새만금 농업회사 유치 등 관련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농생명 산업 벨트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이에 전라북도가 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그 길을 먼저 간 농업 선진국 덴마크를 찾았다. 농생명 산업을 일찍이 국가산업으로 정하고 발전시킨 농업선진국에서 그들의 현실을 둘러보고 관련 시스템도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취재는 기본에 충실한 덴마크 농업, 환경을 생각하며 기술 개발에 열성적인 농업인들, 그들이 덴마크 농업을 선진화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업에 ICT 기술을 융복합시키는 데 급급한 게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농촌 현실과 추진 과제는 동떨어진 점이 많다. 덴마크 농업은 과연 우리가 기본을 건너뛰고 선진 농업을 구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환경이 먼저인 덴마크 축산

여름이 시작되는 덴마크의 6월. 코펜하겐에서 약 300km 떨어진 프레데리샤(Fredericia) 지역의 돼지농장인 아울센터 차이켄튼(Avlscenter Trekanten I/S) 종돈장을 방문했다.
이곳 마을을 찾는 순간부터 한국 농촌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산이 거의 없는 특성을 지닌 덴마크답게 마을 전체는 낮은 평야로 이뤄져 있고, 대부분의 논에는 밀과 보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국적 농촌마을의 풍경일 뿐이었다.
정작 특이한 것은 이 마을 전체에서 돼지를 키우는 농장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시원한 공기 속에 돼지 분뇨 냄새가 전혀 묻어나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농장마다 돼지 분뇨를 부숙시키는 탱크를 10여개씩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탱크마다 약 3,000톤의 돼지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여서 도대체 이 마을 농장들의 돼지 마릿수는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북지역 각 시군에 1~2개씩 존재하는 분뇨 종합처리장 수준의 부숙 시설을 농장마다 갖추고 있으니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덴마크 정부는 돼지 분뇨를 약 9개월간 보관하는 기준으로 농장마다 부숙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농장 경영권을 박탈시킬 정도로 환경 보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었다.
때문에 돼지 모돈 약 2,400두만을 키우는 차이켄튼 종돈장은 약 3만 톤의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부숙 시설 12개를 갖추고 돼지를 사육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모돈으로 성장시켜 수출할 2개월 미만의 돼지들을 주로 키우고 있어 3만 톤 정도의 부숙 시설을 갖춘 것이다.
만약 비육돈 2,400두를 키우는 농장이라면 이 보다 훨씬 큰 규모의 부숙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게 농장주의 설명이다.
또한 완전히 부숙된 냄새가 나지 않는 분뇨는 비료 용도로 보리밭과 밀밭에 뿌려지는데, 이 때 역시 맨땅에 부숙 분뇨를 살포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새싹이 자라고 있을 때 분뇨를 살포해야 할 정도로 환경 보존에 대한 규칙은 까다롭다.
아울러 차이켄튼 종돈장은 이 농장이 갖춘 약 1,500ha의 밀과 보리밭에 분뇨를 살포함으로써 돼지 분뇨가 넘쳐나지 않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토양으로 스며들어 하천으로 흘러드는 분뇨를 최소화하고, 작물 새싹들이 분뇨를 충분히 흡수토록 함으로써 자연 생태계에서 자원이 순환되도록 한다.
연간 약 2만4,000두의 돼지를 생산해 덴마크와 세계에 판매하기 위해서, 또한 덴마크 국민과 세계에 신뢰받음으로써 지속 가능한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 차이켄튼 종돈장은 돼지분뇨 처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철저한 차단 방역도 강점

차이켄튼 농장의 3대 주주인 요언 스코(32, Jorgen Skov Hansen, 아버지, 누나와 공동으로 차이켄튼 운영) 대표가 농장 안내를 시작하면서 기자는 다음으로 한국 농장과 다른 점도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덴마크 농장에서는 농장 안으로 출입하는 모든 것을 철저히 소독함으로써 전염병 원인을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차이켄튼 농장 역시 그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물론, 출입자 모두가 맨몸 샤워 실을 거쳐야 하며, 내부에서 사용하는 옷과 신발 등으로 갈아 신도록 한다.
나올 때 역시 샤워 실을 거쳐야 하며, 맨몸으로 모든 것을 씻어낸 후에야 보관했던 본인의 옷을 입고 농장 외부로 나올 수 있다.
기자는 모돈을 키워 수출하는 농장이기 때문에 유독 차이켄튼 종돈장의 출입 규제가 까다로운 줄 알았다. 그러나 요언 대표로부터 덴마크 내의 모든 농장은 이 같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내부로 볼펜 및 수첩마저 가져갈 수 없어 내부에서 사용하는 필기구로 취재를 진행했으며, 꼭 필요했던 카메라는 농장주가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 소독약으로 꼼꼼히 닦은 후에야 카메라 기자에게 넘겨졌다.
이와 함께 돼지를 실어 나르는 차량의 접근 역시 각종 기구와 시스템으로 철저하게 차단함으로써 세균의 전파를 막는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한 신발 바닥 소독판과 에어샤워 부스 통과, 방진 가운 및 덧신 사용 등과 비교하면 세균 전염 차단 가능성 면에서 크게 차이남을 느낄 수 있었다.
덴마크는 이렇게 농장 출입 통제를 까다롭게 함으로써 1980년대 이후 가축 전염병을 완벽히 차단하는 국가가 됐다.
이후 우리나라의 3배에 가까운 연간 약 3,000만 마리의 돼지를 키우면서도 전염병 한번 경험하지 않았고, 이는 소비처의 신뢰로 이어져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되고 있다.
아울러 농장에서 병으로 죽은 돼지의 사체 역시 농장에서 1km 정도 떨어진 전문 수거용기에 분리하는 것도 우리와는 큰 차이점임을 확인했다.
전염병에 노출된 돼지를 땅에 묻을 경우 병원균은 더욱 활성화 돼 막을 수 없게 되고, 지하수 및 토질의 회복은 어려워진다는 게 덴마크 농장주들의 결론이었다고 요언 대표는 설명했다.

◆생산력 증대가 환경에 도움

종돈장에 들어서니 돼지분뇨 냄새 보다는 돼지 특유의 냄새가 더욱 많이 떠돌았다.
분뇨 처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임신, 출산, 사육 시스템은 이미 규격화 및 자동화된 것이 많아 불과 2~3명의 근무자가 3개 종돈장(2,400마리) 중 1곳을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덴마크 돼지 농장의 첨단 시스템이 우리와는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기 위해 이 농장을 찾았으나, 대부분의 시스템은 우리가 이미 시범적으로 개발해 적용하고 있는 것들과 유사했다.
다만, 이들의 시스템은 여러 가지 검증을 거쳐 규격화 된 것이기에 효과적이면서도 덴마크 전국 농장 시스템 및 유럽 등에 수출된 시스템과 쉽게 호환이 되고 원격 점검 및 개선이 쉽다는 게 특징이다.
또한 사양 관리와 출산 방식까지 발전하다 보니 단위당 생산력이 우리나라와 차이가 난다는 게 요언 대표의 설명이다.
차이켄튼 종돈장에서는 보통 모돈 1마리가 18~25마리의 새끼를 낳고 있었는데, 어미돼지의 젖꼭지 수 보다 많은 돼지가 태어나기 때문에 젖꼭지를 찾지 못하는 새끼돼지들을 다른 돼지들에게 입양하는 일이 직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고 있었다.
한국 어미돼지의 생산력이 아직 10~12마리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출산 실을 지나자 한국으로의 수출 길을 기다리고 있는 2개월 령의 아기종돈들은 씩씩한 기운을 내뿜으며 보육 실 이리저리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아기종돈들을 분리하던 요언 대표는 "돼지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모돈의 생산력이 증대되면 돼지 사육마릿수를 줄일 수 있게 되고, 사육마릿수가 줄면 돼지 분뇨도 줄고 경영비 역시 줄어 경쟁력이 크게 상승한다. 덴마크 돼지 농장주들은 이점을 정확히 알고,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기술을 서로 공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로 최신 생산기술을 적용하다 보니 각 농장에서 새로운 신기술 개발이 쉽게 이뤄지고, 또 다시 덴마크 농장주 모두는 최신 기술로 무장하고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돼지 농장들이 생산력을 올릴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양국의 농업 발전 속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생을 위해 노력하는 농업인

차이켄튼 종돈장은 우수한 모돈을 생산해 세계 70여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미 덴마크 농업은 첨단화를 넘어서 생산력이 크게 향상된 이유로 수출을 해야만 하는 구조에 다다르고 있었다. 즉, 생산량이 많아 국내에서 1/3만 소비하고, 나머지 2/3는 수출해야 농장이 유지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농식품은 덴마크 수출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와 시에서는 농업 관련 부서를 두지 않고 있다.
농업 관련 지원 예산도 전혀 없다.
그저 농민의 자생을 시장 논리에 맡겨 놓고 그 비중이 조절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덴마크 농업인은 EU 차원의 수출 보조금 약간만을 지원받을 뿐, 정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기대하지 않는다.
때문에 덴마크 농업인은 살아남으려면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며, 생산성을 크게 높여야 하는 과제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농업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덴마크 정부는 농업 생산성이 수출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정부 지원금을 모두 없앴고, 농업지도사 및 관련 공무원까지 없앤 것이다.
이제 덴마크의 모든 농업인은 100% 자기자본으로 농사를 영위해야 하며, 컨설팅까지도 자기 돈과 정보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력과 자본, 경험 등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러서 덴마크 농업인들은 강력한 생산성을 무기로 세계 농산물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덴마크 농업인들은 기술 연구를 멈출 수 없다. 돼지 1두를 수출해서 얻을 수 있는 순이익이 현재 한국돈으로 8,000~1만5,000원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덴마크 농업인들이 연구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반대로 덴마크 정부 환경부처에서는 농촌 환경 관리를 까다롭게 관리한다.
돼지 분뇨 처리 방법, 냄새 등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심한 규제를 가한다. 때문에 농장은 거의 공장 수준으로 냄새를 저감시킨다.
농업인은 생산품을 수출하면서도 농산물 가공식품 공장 수준의 마진율을 유지할 뿐이다.
덴마크에서 이제 농업인이 크게 돈을 모으는 시절은 사라지게 됐다는 게 요언 대표의 설명이다.
대신 넓은 농업 규모를 유지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농부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농부의 자녀들은 부모의 농업을 이어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농업을 영위하려면 농업대학을 나와 자격증을 얻어야 함에도 자녀들은 농업을 이어가기를 원하고 있다.
요언 스코 대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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