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로로써 도마를 처음 만났다. 수묵 작업이라 걱정했다. 먹을 댔는데 한지와 똑 같다. 나무가 먹에 젖었을 때 나는 냄새는 한지의 그것처럼 향기로웠다”(고형숙)
“주부 10년이다. 낡고 오래된 엄마 도마가 생각났다.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두를 이용한 작품으로 실제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이봉금)
“아침마다 엄마 도마 소리를 잠결에 들으며 맛있는 음식 기대했었다. 2달 전 카레 이후 요리를 못했다. 우리 아이도 잠결에 도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깰 수 있도록 하고 싶다.”(한숙)
“재미로 깎았다. 10년 전 이 동네에 와서 5년 정도 살았다. 당시 계남정미소를 수리한 경험도 있다. 손 때 묻은 공간이다. 도마는 나무를 깎아 없애야 완성된다. 도마는 군더더기 없는 삶이 올바르다 말한다.”(장우석)

진안 농촌마을에서 보통 사람들의 기억과 삶을 가치 있게 끌어내 주목을 받았던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대표 김지연)가 ‘뜻밖의’ 전시로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3일 오후 3시 도마 축제의 시작 알리는 전시 개막식에는 지역 주민과 참여 작가 등이 모였다.
이일순 작가의 진행으로 열린 개막식에서는 전시제안자인 유성기의 인사와 장우석, 김영춘, 고형숙, 이봉금, 한숙 등 작가들의 ‘도마’ 이야기가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몸으로 칼을 맞고 살아야 하는 ‘도마’에 대한 이야기다.
‘도마 전시’는 만경에서 제재소를 운영하는 유성기 씨의 제안이 시작이다.
 김지연 대표는 그의 제안을 듣는 순간 “몇 초 만에 내 귀를 스쳐가던 (도마)단어가 갑자기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아무 구체적인 의논도 없이 전시를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사실 ‘도마’처럼 단순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목적이 단순하니 형태도 단순할 수밖에. 지가 아무리 꾸미고 가꾸어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을 수는 없잖은가.”

부엌칼이 스쳐간 자리가 곱다.//마늘도 푸른 고추도/아침과 저녁나절의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사각사각 잘려나가곤 했다.//생선과 고기가 다루어지며/제 비린내를 버릴 때에도/그리 쓸쓸하지 않았다.//도마 위에서는/어린 것들이 입맛을 다시며/모락모락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이제 어머니는 떠나고 없다//나무의 향이 사라진 도마 위로/그녀가 가질 수 없었던 단 한 자루의 칼날이/수천 날을 비스듬히 엇갈리며/남아 있을 따름이다//정갈히 곱다
<김영춘 ‘어머니의 도마’ 전문>

그런 도마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선이 가는 순간 그것의 처연한 삶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몸으로 칼을 맞고 살아야 하는 운명적인 태생을 알기나 할까. 수만 번 아니 수억 만 번 이어지는 시간의 부대낌 속에서 때로는 칼보다 더 질기게 버텨낸다.
시작은 제재소 주인이 제안을 했지만 그는 좀 더 색다른 전시를 하고 싶어서 봄부터 매일 도마를 보고 쓰다듬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계남정미소가 문을 여니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좀 색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래서 도마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에서 비로소 전시는 시작된다. 나무를 다루는 것이 업인 제재소 사장의 도마가 선두를 서고, 놀기를 좋아하지만 일을 잘하는 장우석의 느린 손놀림으로 만든 도마 작품 ‘도마의 무게’는 좀 뒷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전주에서 작업을 하는 고형숙(한국화), 양순실(서양화), 이봉금(한국화), 이일순(서양화), 한숙(서양화) 등 다섯 명의 회화작가들의 토막잠 같은 그림이 각자의 개성으로 자리를 잡는다. 시인 김영춘의 도마와 사진가인 김지연의 도마가 늙은 어머니들의 도마와 함께 여유롭게 어우러져 도마축제가 된다.
아쉽지만 전시는 매일 열리지 않는다. 오는 26일까지 일주일에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3일간 만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의 063-905-2366.
/이병재기자·kanadasa@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