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의회가 1년 전 검찰 수사로 동료의원까지 도중하차시킨 재량사업비 부활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사면초과에 몰리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전북도의원 등 지방의원들은 일부 유권자들로부터 밀려드는 지역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거기간 도움을 줬던 유권자의 지역 민원을 들어줘야 하는데 재량사업비가 폐지돼 예산반영이 어려워 난감한 실정이다.

대다수 도의원들은 “유권자와 지역민들로부터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면서도 “재량사업비가 없어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어 유권자를 오히려 피해 다닌다”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도의원 대부분 재량사업비를 부활해달라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시민사회단체와 도민들은 도의원들의 재량사업비 부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도의회가 재량사업비를 폐지한지 1년도 안 지났는데 지방선거를 통해 의원들이 교체됐다고 다시 예산을 세워달라는 것은 고양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량사업비는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로 표면적으로는 지자체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적법하게 편성·집행되지만, 의원들이 본인 지역구 (민원)사업을 모아 보내면 지자체가 그대로 예산에 반영해 '의원 쌈짓돈'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

재량사업비 폐지는 도의원과 지방의원들의 결단 뿐 아니라 마구잡이식 민원을 요구하는 지역민들의 자제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도의원 3명 불명예 중도하차 벌써 잊었나=지난해 4월 전북도의회 황현 의장은 전국 광역의회 최초로 “재량사업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5월 광주광역시에 열린 전국시도의장협의회에서도 재량사업비 일괄폐지를 건의했다.

지난해 검찰은 재량사업비로 추진되는 공사를 특정 업체에 몰아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현직 도의원 4명과 전주시의원 3명, 브로커 등 21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이에 전북도의회는 의원 재량사업비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지방의회가 생긴 이후 재량사업비 리베이트로 전현직 도의원 4명이 기소된 것 뿐 아니라 현직 3명이 중도에 옷을 벗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10대 의회 대부분 도의원들은 재량사업비 등으로 수사당국에 불려 다니는 수모를 겪었다.

제11대 도의회는 민주당 의원이 39석 가운데 35석을 차지했고, 10대에 이은 재선의원도 소수로 구성됐다. 이 때문에 초선의원들 사이에서 ‘지난 의회에서 일어난 일과 상관없다’며 재량사업비 부활 요구에 입을 닫은 재선의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민 요구는 어떻게 해결하나=11대 의원들은 10대 의회에서 폐지한 재량사업비가 전체 의원들을 대상으로 합의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원총회 등을 통해 재량사업비 폐지 부분을 다시 의논해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의장단 선거에서 재량사업비 부활을 약속했기 때문에 의장단을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의원들은)주민 숙원사업과 민원을 지자체에 건의만 하고 집행은 지자체에서 하면 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의장단과 의원들은 “의원들이 많은 민원을 지역 주민들로부터 받다 보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업(재량사업비)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정치인이 주민 민원해결 없이 어떻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느냐”라고 빗발치는 민원에 따른 고충을 설명했다.

전북도의회는 재량사업비 폐지를 약속한 10대 의원 70%(28명)가 초선으로 물갈이 된데다 민주당 일당체제여서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부활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1년 전 재량사업비와 관련된 검찰 수사로 현직 의원 3명이 퇴진하면서 불명예 오명을 썼는데도 지방선거에서 의원만 교체됐다고 부활시키려는 의도는 향후 부메랑으로 다갈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장병운기자·ar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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