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지난 9월 7일 전북연구원이 주관하는 전라도 천년 학술대회가 “전라도 천년의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로 열렸다. 필자는 전라도 천년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과제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라도는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로 조선시대 국가 재정의 1/3을 담당할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구가한 땅이다. 정치적으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는 등 그 위상이 대단하였으며, 임진왜란 의병을 비롯하여 구한말 의병활동 등 국난 극복에도 전라도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전라도는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하여 새 시대를 향한 열정이 강한 곳이었고, 경제적 풍요를 토대로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예향이요 풍류의 땅이었다. 이처럼 전라도는 국가의 보장지처요 민족사의 주축이었다. 
그럼에도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지 않다. 전라도 인심을 부정적으로 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널리 알려진 것이,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전라도 인심을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평한 것이다. 그리고는 서민이 그렇지 사대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전라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고, 외가가 전라도 함양오씨임에도 전라도 인심을 매우 나쁘게 평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전라도 인심이 이러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이는 통치자들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통치자들의 시각에 볼 때 전라도는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를 불안한 존재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견제를 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그랬음에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동학농민혁명이 여기에서 터졌다.
전라도를 부정적으로 몰아간 저간에는 고려 태조의 유훈인 훈요십조와 견훤의 후백제가 있다. 훈요십조에서 풍수를 들어 전라도를 반역의 기운이 있는 땅으로 몰아 차령이남 사람을 쓰지 말라고 했고, 후백제 견훤이 뿌려 놓은 악덕의 잔재가 남아 전라도 인심이 사납다는 논리를 폈다. 조선시대에도 그러했다.
전라도는 저항과 변혁의식이 강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었다. 이것이 위정자들로 하여금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자아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그 실제를 제대로 보아야 할 때이다. 그럴 때 전라도가 제대로 보이고 전라도 천년사가 제대로 서서 미래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전라도에 대한 역사서의 부정적인 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재고가 필요하다. 옛 기록들에 보면 전라도만 나쁘게 평한 것이 아니다. 충청도와 경상도에 대해서도 불편한 평들이 있다. 조선말 총리대신을 지낸 박정양이 삼남을 돌아보고 평한 인심에 영남은 우둔하고, 충청도는 마을마다 인심이 달라 영남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과제는 이런 차대가 전라도 역사의 본질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견제와 차대가 전라도 역사에 영향은 주었지만, 그것이 전라도의 역사문화를 형성한 본질은 아니다. 전라도의 본질은 풍요를 토대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전라도사람들이 중앙에 진출이 잘 안되어 문화예술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질은 아니다. 전라도의 경제적 풍요와 넉넉한 심성, 예술을 아끼는 마음이 그 본질이다. 중앙 진출을 못해 예향이 되었다는 것과 호남인의 심성이 문화예술을 선호하였다는 해석은 의미가 다르다.
전라도 정신하면 으레 등장하는 저항정신도 그 의미를 잘 새길 필요가 있다. 전라도의 저항은 상대가 있는 저항이 아니다. 불의에 대한 저항이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차원 높은 저항이다. 그런 점에서 전라도 정신은 저항보다는 변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전북의 경우 지금의 어려워진 형편으로 과거사를 보는 데서 올 수 있는 오류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전북이 여러모로 어렵다. 그러나 역사속의 전주와 전북은 그렇지 않다. 전주는 전라천년의 중심이었고, 조선 3대 도시로까지 손꼽던 대도시이다. 지금의 열악한 상황에 갇혀 있다 보면 지난날의 화려함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전라도 역사를 중앙의 시각이 아니라 이제 지역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전라도 천년을 맞는 이 뜻깊은 해, 전북 자존의 시대를 열어가려 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 천년에 한번 오는 해, 지금 어렵기에 더 귀중한 전라도 천년, 자랑스럽고 대단한 역사를 가진 전북이 천년의 자긍심을 잘 살려나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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