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천년특별기념공연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제 45회 정기연주회 “어머니 땅”

/김태균(전 국립국악관현악단 기획위원, 음악평론가,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전라(全羅)라는 정명, 천년을 기념하는 전북도립 관현악단의 기념공연이 지난 10월 11일(목) 저녁 7시 30분 한국소리 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열렸다. 전라의 민초들이 피어올린 갑오년의 횃불이 5월광주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타오는 역사를 국악칸타타라는 대서사시에 담으며 전북도립국악원은 바로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라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주제로 삼았다.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다는 말의 무게로 당당하게 다가왔다.
  공연을 보는 내내 전북의 의미가 어떻게 연주회를 끌어갈까 보았다. 총 다섯 개의 작품을 근간으로 칸타타가 구성됐다. 칸타타는 시와 합창 그리고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종합공연형태이다. 판소리와 성악, 그리고 서양악기를 결합한 이날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은 3단 높이의 악단 배치로 공간적 확장성을 기하고 있었다.  이번 칸타타는 총 5곡으로 구성됐다. 제1곡 어머니의 땅, 영원한 왕도 “생명의 땅이며,어머니의 대지여”( 강상구 曲). 제2곡 천년의 소리, 전라도 아리랑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정읍(井邑)”(김대성 曲). 제 3곡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안태상 곡). 제4곡 떨어지는 꽃잎이 바람을 탓하지 않듯 “교성곡,빛의 결혼식”(강성오 曲). 제5곡 천년의 꽃잎, 바람으로 피어나라! “천년의 문을 열어라”(김대성曲) 등 비교적 구성력과 짜임새 있는 흐름으로 각각의 특징을 가지며 감동을 연출했다.
  제1곡은 어머니의 땅에 열리는 천년의 역사, 그 웅혼함을 담은 스케일 있는 서곡이었다. 박남규 시에 낭송과 합창을 담아 흡사 대지와 하늘을 아우르는 우주적 감동 스케일로 펼쳐졌다. 생명의 땅 어머니의 대지, 전라북도의 기상이 펼쳐졌다.
  그런 펼침 속에 제2곡 “정읍”이 연주됐다. 왕도의 기운과 아리랑의 민중적인 정서를 결합한 이 곡은 조선의 혼을 기렸다. 현존 최고의 국악곡인 수제천의 원 기원이 정읍사이다. ‘달아 노피곰 돋아사’ 흡사 천상의 울림처럼 정읍의 선율이 열리고 그리고 익산민요 “만물산야”의 애절한 선율이 서로 풀리고 맺으며 정중동의 미학을 펼쳤다. 익산에 가면 백제가 그대로 있다. 익산에 가면 아직도 백제의 바람을 느낀다. 백제 천년을 지키는 완고함을 느낀다. “만물산야”라는 민요가 그렇고 “도이가”가 그렇다. 정읍(井邑)의 의미를 알아야한다. 우리민족의 정신적 고향이 바로 정읍이다. 정(井)은 우물 정, 바로 수원이다. 물의 근원은 생명의 근원. 수원은 곧 북극성. 전라도에 집중된 고인돌에 그리고 첨성대 위에 새겨진 우물 정은 모두 북극성을 상징한다.
  제3곡 “약무호남~”은 그런 전북의 기개를 담고 있다. 대지를 울리는 함성처럼 역동적인 장단과 리듬감이 돋보인, 생명을 살리는 원초적인 기운처럼 일렉트릭 기타음의 비트가 돋보인 작품이다. 대중음악적이 감성으로 분방한 리듬을 타고 호남의 기개가 펼쳐졌다. 그리고 제4곡 “빛의 결혼식”. 죽음의 절망위에서 세상을 살리기 위해 피어난 수많은 항쟁들. 동학에서 5월 광주항쟁 그리고 6월 항쟁에서 마침내 촛불혁명에서 이르기까지 그것은 죽음이지만 생명과 만나는 위대한 “빛의 결혼식”이었다. 나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를 그런 산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민족혼례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죽음을 상여하고 비나리로 역사를 달래지만 그 역사를 다시 생명으로 살아온다. 전멸할 줄 알고도 북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울리며 우금치고개를 올라가던 동학군의 함성이 오월로 그리고 마침내 촛불로 그리고 전북도립국악원관현악단의 울림으로 생생히 살아왔다. 그리고 제5곡. 그 위대함의 역사를 조곡(弔哭)하지만 어머니의 땅은 새 살림, 새 생명을 위해 “천년의 문을 연다”.
  이날 연주회는 전북도립국악원이 펼친 모험이었지만 새로운 이정표이다. 국내 최고의 국악작곡가 강상구와 김대성의 음악과 이에 자웅을 겨루는 안태상과 강성오 등 전북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만든 회심의 음악들을 흡사 결을 다듬듯 정교하되 힘 있고 화려한 선율로 담아낸 조용안 지휘자와 도립 관현악단 연주자들의 노력과 정성은 모험을 새로운 이정표로 바꾼 힘이었다. 보통 피리나 대금을 불다 어느날 지휘 무대에 오르는 풍토에서 조용안 지휘자의 경우는 좀 각별하다. 어찌 저런 연주를 잡아낼까 했는데, 역시 소리의 이면을 잡고 노는 그리고 꽉 짜인 구조에서 판을 맺고 조이며 풀고 놀 줄 아는  고법(鼓法)의 귀재임을 알고 역시라는 말이 나왔다. 전통적인 소리판을 주도하는 것은 장단잽이다. 현(絃)이 물결처럼 흐르면 관(管)이 비단 깔듯 출렁이고 흐름을 잡아주는 타(打)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현악이다. 현장에서 음악과는 다르게 녹음을 통해 들은 음악은 다른 감동을 주었다. 이날 연주회의 옥의 티라면 음향과 영상의 문제이다. 무대는 지휘자를 핵으로 하며 각 곡마다 특장을 이루며 흘러간다. 영상과 조명, 음향은 이런 흐름에 특징을 잡아주어야 더욱 감동의 무대로 만든다.
  끝으로 전북지역 시인과 화가의 콜라보와 이번 연주회를 만든 전북도립국악원과 관현악단 기획팀의 공(公)도 중요하다. 기본 고답적인 전승과 연주 위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대와 역사 그리고 지역을 음악으로 소통한 연주회였다. 이를 통해 전북다움, 전북 세움이 있고, 전북이 정읍의 의미로 즉 세상의 중심으로 웅비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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