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산은 금강산을 참 많이 닮은 산이다. 우선 아름다운 산세가 그렇고, 거울처럼 맑은 물이 그렇다. 또 찾는 사람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2개의 폭포와 기암괴석은 왜 강천산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려지게 됐는지를 보여 준다.
일상에 지쳐 숲속에서의 진정한 휴식을 즐기길 원하는 사람이면 강천산으로의 힐링 여행을 권해본다.

▲ 순창을 대표하는 관광지 ‘강천산’

 전국 최초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은 해발 584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맑은 계곡과 5개 코스의 등산로를 비롯해, 맨발 산책로, 병풍폭포와 구장군 폭포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강천산을 끼고 도는 계곡과 바위가 아름다워 강천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그 중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구간은 병풍폭포부터 구장군폭포까지 이어지는 맨발 산책로다.  강천산은 산세가 가파르지 않아 맑은 계곡을 따라 아이들도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산책로가 왕복 5km가량 이어진다. 황토길에 모래를 뿌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운 붉은색 단풍이 마치 병풍처럼 등산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다.
특히 현수교부터 구장군 폭포까지 800m 가량의 애기단풍이 장관이다. 단풍들로 터널을 이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청량감을 느끼게 해줄뿐더러 포근한 기분까지 들게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대화하면 어느새 구장군 폭포에 도착해 있다.

 

▲ 병풍폭포와 구장군 폭포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강천산 입구를 조금 지나면 등산객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벌리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저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에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다.
 바로 ‘병풍폭포’이다. 병풍폭포는 이름처럼 병풍을 드리운 아름다운 폭포다. 또한 병풍처럼 넓게 펼쳐져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병풍폭포는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는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잊게 만든다. 이곳에서 폭포수를 맞으면 죄 지은 사람도 죄가 씻겨 내려간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높이 50m의 시원한 폭포수가 연신 쏟아지며, 갈 길 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핸드폰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폭포앞에서 제각기 포즈를 취한다.
 병풍폭포가 소담한 여성의 미를 간직한 폭포라면 구장군 폭포는 웅장한 남성의 미가 돋보이는 폭포다. 강천사를 지나 마주하는 구장군 폭포는 높이 120m에서 3줄기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병풍폭포보다 높이가 높다보니 쏟아지는 모습이 웅장한다. 또한 산수정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강천산에서 가장 빼어난 비경으로 꼽힌다. 강천산에 왔어도 구장군 폭포를 보지 못하면 강천산에 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장군 폭포의 아름다운 절경은 보는 이들의 혼을 빼 놓는다.
 이 폭포는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아홉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강천산을 처음 방문해 구장군 폭포를 본 사람들은 마치 스위스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선사받는다.

  ▲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을의‘강천사’

  강천산의 초입에서 맨발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즈넉한 절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강천사다. 강천사는 고려 887년 진성여왕때 도선국사가 창건 했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대웅전, 오층석탑과 금강문 등이 있는 조그만 절이다. 창건자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해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다고도 전해진다.
그래서 인지 여성스럽고 수수함이 많이 느껴지는 절이다. 강천사는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 한모금의 휴식을 기꺼이 내 주는 휴식처다. 오가며 들어와 쉬며 그 소담한 아름다움에 빠져 본다.

  ▲ 조선시대 선비의 절의가 느껴지는‘순창의 삼인대’
 
 강천사 앞 개울을 건너면 숲으로 둘러 쌓여있는 비각이 보인다. 비각 안에는 순창 삼인대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중종반정이 성공해 중종의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를 역적의 딸이라 하여 왕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자, 1515년에 당시 군수인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 등이 단경왕후 신씨 복위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관직에서 쫓겨날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관직을 표시하는 도장(職印, 직인)을 소나무가지에 걸었는데 그 후 이곳에 비각을 세워 삼인대라 하였다.
 죽음을 각오하면서 자신들의 절의를 지키려 했던 선비들의 기개가 느껴지는 비석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여본다.

▲ 여전히 스릴 넘치는 현수교

 후들후들 다리는 떨리지만 스릴만점의 현수교도 명물이다. 산허리에 걸쳐놓은 길이 70m, 높이 50m의 구름다리인 현수교는 한때 동양 최대의 길이를 자랑했다. 세월이 흘러 최대라는 타이틀은 넘겨줬지만 아직도 관광객들에게 아찔한 매력을 선사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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