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형사재판 선고)까지 오는데 8년 10개월 걸렸습니다.”

22일 오후 2시 전주지법 3호법정, 판결 선고가 있은 직후 한 여성이 오열을 쏟아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듯 그의 눈물은 법정을 나선 뒤로도 한참을 흘러내렸다. 심경을 밝히는 중간에도 목이 잠겨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흘린 눈물에는 사건 발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속병과 더 빨리 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피해 여성이 연대하고 의지할 그 어떤 사명감을 담고 있었다. 전북 첫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자인 배우 송원(31)씨다.

송 배우는 앞서 2월 대중 앞에서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는 23살 막내 배우에 불과하던 2010년 자신이 속한 전북 유명 극단 대표 최모(49)씨로부터 성추행과 성희롱을 겪었다.

최씨는 야유회 자리에서 송 배우를 따로 불러 함께 이동했으며 식사를 할 때도 성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모텔로 향해 “함께 자자”는 발언도 뒤따랐다. 사건 이후 송 배우가 극단을 탈퇴하자 최씨는 ‘남자관계가 복잡해 퇴출시켰다’는 소문을 양산했다. 다른 단원들의 좋지 못한 시선도 송 배우에게 쏟아졌다.

송 배우가 사과를 받기 위해 대중 앞에 선 것과 달리 최씨는 부인하는데 급급했다. 경찰조사에서도 “손을 만진 것은 맞지만 후배 격려 차원이었다. 고의가 아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반면 사법부 판단은 최씨의 생각과 달랐다.

전주지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박정대)는 이날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등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12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시설 10년간의 취업제한을 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최씨는 직업적인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나이 어린 피해자들을 상대로 인적 관계를 악용해 여러 차례 강제추행했다. 피해자들과의 관계와 범행 경위를 볼 때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지난 2013년 4월부터 2016년 4월까지 극단 안팎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배우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송 배우의 사건은 법체계에 따라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범죄와 관련한 친고죄가 2013년 6월 폐지됨에 따라 이전 발생 사건은 처벌이 어려운 이유다. 더욱이 친고죄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한정하고 있다.

판결 직후 송 배우는 “힘든 시간이었다. 수사가 길어지고 최씨가 부인하면서 불안했다. (최씨가) 진심으로 반성 하면서 쇄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전북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올 상반기 이뤄진 미투 폭로에 대한 사법부 판단이 이제부터다. 직위를 악용한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말했다./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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