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현기씨 결혼 기념사진 채색

  전주시 완산구 관선4길 28. 이곳에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화사진관’이 있다. 사진사 윤현기씨는 이 곳에서 줄곧 사진관을 운영했다.
  그의 나이 72세. 그가 운영하는 미화사진관의 나이는 벌써 50년이 넘었다. 윤현기씨와 미화사진관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2대째 사진사다.
  그의 아버지도 사진사였다. 일제 강점기 시기 경기전에서 사진관을 하던 일본 사람에게 사진을 배웠다. 배우기보다 일을 하며 그들의 등 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기술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그들로부터 그의 아버지는 그들의 등을 넘어야 사진 기술을 알 수 있었다.
  해방과 전쟁을 거쳐 그의 아버지는 시청 정문 앞에서 사과 상자로 만든 암실통을 맨 급성 사진 사진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팔 크기의 암실통은 두 번의 자리를 옮겨 지금의 미화 사진관이 되었다. 아버지의 어깨를 넘어 바라본 사진들은 이제 할아버지가 된 아들의 업이 되었다.
  한 개인의 인생사이면서 직업으로서의 사진사, 그리고 사진의 역사를 조용히 응시하는 전시가 열린다.
  사진작가 장근범 기획전 ‘사진사(寫眞師)의 사진사(寫眞史)’전이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월, 화 휴관) 계남정미소 서학동사진관에서 열린다. 작가와의 대화는 12월 8일 오후 3시.
  한때 현재의 혁신도시처럼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주로 남은 문화촌. 장근범은 그곳에 이사와 동네 할아버지들과 함께 즐기면서 만드는 문화예술프로그램 ‘꽃장’을 운영하면서 동네 근처 사진관에 주목했다.

▲ 현 미화사진관

  “여기 사진사가 있다. 사진사가 서있는 사진관 쇼윈도에는 시대마다 변화를 겪었던 사진사(寫眞史)가 고스란히 걸려있다. 그 사진사의 이름은 윤현기씨다. 그리고 그가 50년을 넘게 유지해 온 사진관의 이름은 미화 사진관이다. 나는 50년이 된 미화 사진관에서 오래된 사진사 윤현기씨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미화 사진관을 운영했던 한명의 사진사의 연대를 되짚어 사진사를 정리중이다.”
  초상 사진의 보편화는 사진관이 주로 기능을 담당했던 초상 사진의 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컬러사진이 등하기 전 초상화를 회화와 사진이 서로의 경계에서 ‘사초’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마을에 하나씩 있었던 사진관은 주변의 이벤트로부터 꼭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좋은 시절이라 기억했다.
  컬러 사진의 등장과 영상의 시대 그리고 사진 대중화에 따른 수요 부족은 한때 사진붐을 일으켰던 시대의 공급자들을 줄지어 도산하게 만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포토샵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주변 사진관들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물었고 또다시 연습과 연습을 거쳐 디지털 사진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했던 그는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수정하고 사진을 출력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겪었던 삶들의 흔적들을 재현하고 있다. 흑백사진, 사초, 컬러 사진, 비디오카메라가 등장했던 영상의 시대 그리고 지금의 디지털 시대를 이 한명의 사진사를 통해 둘러볼 수 있다.
  “서학동 사진관이라는 이름을 소개하자 어떤 사진을 주로 찍냐고 물었다. 사진관이 아니라 전시장이라는 이야기를 더 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학동 사진관이 지역 사진 아카이브의 일환으로 여기 미화 사진관의 주인인 윤현기씨를 소개 하고자 한다. 우리 곁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이 한명의 사진사의 가치를 존중하고 모으는 일들에 서학동 사진관은 지금을 기록하는 좋은 사진관이다. 그리고 좋은 전시장인 셈이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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