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장애를 갖게 된 아동이 15년이 지나 성인이 된 뒤에야 법적으로 구제됐다.

당시 9세 여아에 불과하던 A씨(24)는 2003년 7월 11일 오전 7시 50분께 오심(구역질), 상복부 통증 및 경미한 두통이 전날 저녁부터 있음을 호소하면서 지역 내 1차 의료기관을 찾았다. 의료기관은 위장 관련 질환으로 진단한 뒤 그에 관한 치료약물을 처방했다. 하루 뒤인 12일에도 일부 증상이 여전히 겪어 오전 8시 33분께 지역 내 다른 1차 의료기관을 내원했다.

A씨는 의료기관을 다녀온 뒤로도 잠을 자다가 땀을 흘리며 우는 등 증상을 보였고, 깨우려 해도 일어나지 못하고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이 있었다.

A씨의 보호자는 일련의 증상을 이날 오전 찾은 의료기관에 문의했고, 의료진은 상급 의료기관으로 내원할 것을 권유했다. 해당 의료진은 이후 상급 의료기관 응급실에 A씨가 멕페란 계열 약물을 과다투여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연락을 취했다.

멕페란 계열 약물은 국내 대표적인 소화기계진정제로 임산부가 흔히 처방받는 입덧주사에 해당한다. 우울증, 호흡곤란, 어지러움, 근육마비, 현기증, 자살충동 등 신경계부작용을 유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4세 이하 소아에게 투여를 금지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5시 50분께 지역 상급 의료기관 응급실에 입원한 A씨는 해당 의료기관으로부터 산소와 포도당 생리식염수, 해열제, 항생제, 진정제 등을 처방받았다.

문제는 하루 뒤인 13일 오전 7시 20분께 A씨가 다량의 배뇨를 배출하고, 통증감각은 있으나 의료진의 지시에 따르지 못하는 신경계 이상 증상을 보이고, 동공반사는 있으나 의식이 혼미하면서 나타났다.

이때서야 상급 의료기관은 뇌염을 의심해 관련 검사와 치료를 취했다. 이후 A씨는 7월 21일 서울대학교종합병원으로 전원해 치료받았고, 치료 뒤인 2003년 9월 22일부터 이듬해까지 재활 치료를 받았으나 뇌병변 후유증으로 상하지 근력저하와 강직, 언어장애, 과잉행동 등 영구장애가 남았다.

A씨의 보호자는 2013년 의료기관 3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5년간의 힘들고 지루한 법정다툼을 이어갔다.

1심은 뇌염을 예견하기 어려웠던 점, 투약 금지 약물에 따른 후유증 발생을 단정할 수 없는 점, 통상의 의료수준을 벗어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상급 의료기관이 뇌염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멕페란 계열 약물 투여라는 1차 의료기관의 잘못된 정보를 신뢰해 뇌염에 대한 진단 및 치료가 지연되면서 후유증이 장애의 정도에 이를 정도로 심화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일실수입, 기왕치료비, 향후치료비, 보조구대, 개호비, 재산상 손해액, 위자료 등을 산정해 상급 의료기관에 대한 3억2800여만원 지급을 명했다.

대법원 역시 원고와 피고의 항소 가운데 최근 진행된 선고에서 “상급 의료기관의 진료계약상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이 인정된다”면서 항소심이 선고한 상급 의료기관에 대한 3억2800여만원 지급 명령을 유지했다./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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