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오피니언l승인2019.01.07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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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받았다. 오후 무렵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며칠 전 주문한 생활용품이려니 생각을 했다. 전화를 해서 그냥 경비실에 맡겨 달라는 부탁을 했다. 택배 아저씨는 하얀 아이스박스라고 이야기를 하며 경비실에 맡긴다며 내 말에 반복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생활용품이라야 작은 박스에 넣어 보낼 텐데 아이스박스에 보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갸웃거렸다.
 퇴근을 하면서 택배를 찾았다. 꼼꼼하게 묶은 큼지막한 아이스박스다. 물건이 새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여 있고 들기 쉽도록 아이스박스 중간에 매듭까지 되어 있어 배려가 느껴진다. 보석상자도 이렇게 꼼꼼히 묶지 않을 텐데. 택배를 보내준 권여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 온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도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다. 순찰을 가기 전에 아무 말씀 없이 수레를 슬쩍 놓고 나가신다. 혼자 낑낑 거리며 빌려주신 수레에 택배 상자를 옮기면서 보내 준 마음은 생각지 않고 뭐 이런 걸 보냈냐며 툴툴거렸다.
 보낸 사람은 고향에 있는 권여사다. 혼자 사는 내가 안쓰러운지 가끔 택배를 보낸다. 고향 산에서 나온 산나물을 보낼 때도 있고 텃밭에 심은 고구마, 감자를 보내기도 한다. 택배를 받을 때면 늘 투덜대지만 혼자 자취하는 나는 보내준 물건보다 권여사의 마음이 더 좋다.
 지난 주말이었다. 권여사 생신이라 집에 다녀왔다. 요즘 식사를 뭐하고 먹냐고 묻길래 계란 프라이랑 김만으로 밥을 먹는다고 하니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이번에 보낸 택배 상자 속에  1인분씩 냉동시킨 미역국과 김치와 마른 만찬까지 보냈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쑥떡까지 만들어 보냈다. 먹기 좋도록 콩고물은 따로 담아 보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쑥떡을 좋아했다. 봄이면 매년 고향집에서는 쑥떡을 해 먹었다. 이유는 맏딸이 내가 쑥떡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집에 갈 때 마다 권여사는 쑥떡을 자주 해 준다.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도록 봄에 쑥떡을 냉동실어 넣어 두었다가 내가 가는 날 가족과 함께 먹곤 한다. 콩가루를 묻힌 쑥떡을 입안에 쏙 넣으면 콩가루의 고소함과 쑥의 씁쓸한 향이 섞이는데 그런 맛이 나는 좋다. 
 내가 쑥떡을 좋아하는 탓에 권여사는 매년 4월에는 행사를 치른다. 쑥을 뜯는 일이다. 5월에 가면 쑥이 너무 크고 억세다고 이른 봄에 쑥을 뜯는다. 집 근처에 들판에서 뜯기도 하지만 산골에 있는 외할머니 마을의 쑥이 좋다며 일부러 가기도 한다. 그렇게 뜯은 쑥을 며칠 동안 삶고 말려서 냉동실에 두었다가 내가 가는 날 쑥떡을 꺼내 준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이다. 어느 화창한 날씨 일요일 날 쑥을 뜯던 기억이 난다. 권여사는 티비 앞에서 겜보이만 하고 있는 우리가 답답해 보였던 모양이다. 통닭을 사 주겠다는 것이다. 튀긴 음식을 안 먹이던 권여사는 큰 인심을 쓴 셈이다. 통닭을 사 주는 조건은 우리 삼남매가 쑥을 뜯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통닭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동생들과 신나서 노래를 부르며 들판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주기로 한 통닭은 안주고 쑥을 한바구니 뜯은 사람만 통닭을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앞은 초록색이며 뒤는 약간 흰색인 작은 잎을 보여준다. 이런 걸로 뜯어 오면 된다고 했다. 나랑 동생은 이런 거쯤이야 하며 신나서 밭두렁에 있는 쑥을 마구 뜯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우린 한바구니 가득 채워 엄마한테 달려갔다. 엄마는 깔깔 웃으시면서 이건 먹지도 못하는 풀이라고 다시 뜯어오라고 하셨다. 툴툴 거리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잠시 뒤 아빠는 애들이 뭘 아냐고 하시며 가져온 통닭을 꺼내 놓았다. 우리는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통닭을 먹으며 도란도란 정을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권여사는 가족 야유회를 통닭을 산 준다는 핑계를 대며 했던 것이다.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내게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이제 어느덧 세월이 지나고 나니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통닭을 사 준다는 핑계로 쑥을 뜯으러 갔던 가족야유회는 오랜 추억이 되었다. 요즘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살기 바쁘고 나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큰 일이 있어야 겨우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마음은 늘 고향집에 있지만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늘 권여사가 보내 준 쑥떡을 먹는다. 쟁반에 콩고물을 담은 뒤 쑥떡을 고물에 묻혀 입에 넣었다. 예전 맛 그대로다. 고향의 맛 엄마의 맛 그대로다. 쑥떡을 먹으면서 맛이 엄마의 맛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달콤하고 쌉쌀한 향이 나는 맛이 엄마의 맛이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에 미소가 지을 만큼 달콤한 맛이 나고, 시집가라는 재촉을 하면 쌉쌀한 맛이 드니 말이다. 오늘 쑥떡을 먹으면서 유난히 권여사. 엄마가 보고 싶다.   /전현진 (국민연금공단 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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