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숲에서 생각한 것들 0409. 122x66cm. 한지 목판. Ed.20.jpg

  “생각해 보자. 숲은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쌓여 가득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충만하게 비어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약속들, 지식들, 체계와 습속, 관계, 질서 따위의 강박에 더하여, 이 가득하고 텅 빈 공간에서, 세계의 구성원으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부족함 없이 존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더 갖춰야 할까. 그런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의 생각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것이 숲의 시간을 탐닉한 이유라면 이유다.”
  목판화가 유대수의 열두 번째 개인전이 전주한옥마을 PlanC에서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다. 유대수는 이번 전시에서 ‘숲’을 주요 테마로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빽빽한 나무들을 지나 숲에 들어가 앉으면 마치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모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적막하고 깊은 숲에서 복잡한 세상의 시간은 사라지고 자신 내면의 시간만이 흐른다. 판화가 유대수의 신작 ‘숲’시리즈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나의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유대수는 대학 졸업 후 10여 차례의 개인전에서 목판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주로 일상의 풍경이나 주변 지인의 모습을 소재로 소소한 삶의 단면을 화면에 담아왔다. 이전의 작업은 표현하려는 대상을 대부분 중앙에 배치하고 여백 속에 나머지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작업은 여백을 버리고 공간을 가득 채웠다.
  유대수 신작 ‘숲에서 생각한 것들’은 무수히 반복되는 세밀한 판각으로 가득 채워져 빈 공간이 없지만 시끄럽지 않고 고요하다. 비어있음으로 가득 찰 수 있는 여백의 미를 버리고 빈틈없이 화면을 채움으로서 공간이 더 깊어졌다. 그 곳은 현실을 벗어난 자신만의 우주가 된다.
  그 끝도 없는 공간 속에 슬쩍 끼어 들어 앉아 있거나 걷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함께 위로와 사색의 토닥임이 묻어난다.
  즐거움이든 고요함이든 때로는 끝도 없는 우울함이든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 그가 자기만의 숲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숲에 앉아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유대수는 전주에서 출생해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열두번의 개인전과 80여회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전주서신갤러리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전주한옥마을에 ‘판화카페대수공방’을 열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전시 개막식은 17일 오후 6시. 관람시간은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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