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유서를 통해 통신사의 인센티브 미지급, 실적 압박, 상품판매 강요 등을 고발한 고 이문수(당시 29세)씨.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년이 지나서야 단순 자살이 아닌 사측의 배려나 보호 조치가 미흡했던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으로 판정됐다.

유족 측은 15일 본보와 이뤄진 인터뷰에서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근무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서 등에 따르면 이씨는 2010년 엘지유플러스 하청업체인 씨에스원파트너 전주센터로 입사, 이듬해 2011년 엘비휴넷으로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특수상담실 민원팀에서 근무하며 서비스 해지, 장애, 요금 등 일반 상담원이 해결하지 못한 민원을 넘겨받아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2014년 4월 23일 한 건의 상담은 6시간 동안 이뤄졌다. 상담원이 통화를 중단할 수 없는 맹점을 악용해 응대 태도 등에 불만을 제기했다.

민원인은 하루 뒤인 24일부터 “방문해서 사과해라. 내 앞에서 무릎 꿇어라” 등 지속적으로 폭언과 퇴사 강요를 일삼았다.

첫 상담이 있던 2014년 4월 23일 그가 쓴 일기장에는 ‘울고 싶은데 눈물도 안 나온다. 거지같다’ ‘내 인격은 없는 것 같다. 내편도 없다. 너무 외롭다’ ‘난 혼자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등이 기록됐다.

자진퇴사와 복직을 거친 이씨는 2014년 10월 20일 익산의 한 도로에 주차된 차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차에는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짐만 얹혀 드리고 살아 왔네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유서가 남았다.

글자수 1508자, 200자 원고지 7.7매 분량인 유서에는 사측이 상담원들로 하여금 어떻게 부당하게 노동을 착취해 왔는지 일일이 나열됐다.

이씨의 아버지 이종민(61)씨는 “사건이 불거져 금방이라도 사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을 줄 알았다. 산재가 승인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측은 사과 한 마디 없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유족은 사측의 잘못을 인정받기 위해 4년 동안 고용노동부와 검찰 등을 오갔다.

업체 대표의 처벌을 원한 진정은 2015년 전주지검으로부터 불기소 처분됐다. 연장 근로 등을 단정할 직접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2017년 “애도 표명과 향후 회사가 지원해야 하는 사항에 대하여 유족의 의견을 여쭙고 적절한 보상 수준을 지급할 수 있도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국회에 의견을 제출했다.

결국 사과와 보상은 유족이 아닌 국회에만 닿았다.

지난해 12월 12일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의 산재 신청을 승인하면서 사측의 잘못이 드러났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퇴사 당시 회사는 고인보다는 민원해결을 우선해 고인에 대한 배려나 보호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더 이상의 희생이 중단되길 바라는 유족의 바람과 달리 통신사 상담원 등 감정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여전하다.

그가 일한 고객센터에서 2017년 1월 고교 실습 중이던 상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졌다.

또 지난해 4월에는 엘지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하청업체 소속 상담원의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랐다. 그 또한 고인이 된 이씨처럼 인센티브 미지급, 실적 압박, 상품판매 강요 등의 부당대우를 호소했다.

이종민 씨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대두되고 사측에서도 근로환경 개선 등을 언급해 상황이 변한 줄만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서야 알았다. 아들의 죽음과 같은 일이 더는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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