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정월 초하루 설날은 한해의 처음. 달의 처음, 날의 처음이라 하여 삼원지일(三元之日)이라고 한다. 설날을 뜻하는 원조(元朝)도 이런 의미에서 나왔다. 설날은 모든 날의 시작이다.
 그럼 왕의 설날은 어떠했을까? 경기전 어진박물관에서 설날을 맞이해 왕의 설날을 찾아보았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를 정리해 놓은 글은 없었다. 궁금한 김에 몇가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임금도 사가(私家)에서 차례를 지내듯이 새해 첫날 선왕들을 모신 선원전, 종묘 등을 찾아 배알하였다. 영조는 어머니 숙빈최씨의 위패를 모신 육상궁(毓祥宮)도 찾아뵈었다. 정조는 영조의 신위를 모신 효명전, 아버진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에도 참배하였다.
 임금은 또 사가에서 세배를 받는 것처럼 설날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국초에 편찬한 ‘국조오례의’에 정조하례(正朝賀禮) 의식이 실려 있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와 어좌에 오르면 세자와 종친, 문무백관들이 뜰아래에서 하례를 올렸다. 세자가 먼저 “삼가 전하께서 지극한 어지심으로 선(善)을 체득하시와 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하면, 임금이 “신년을 맞이하는 경사를 세자와 함께 한다”라고 하였다. 그 다음으로 종친과 문무백관들이 하례하였다. 이어 연회를 베풀었다.
 ‘세종실록’, 세종 10년 1월 1일조에 “임금이 면복 차림으로 왕세자와 문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서 여러 신하의 조회를 받고, 경회루에서 종친과 2품 이상의 관원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중궁도 역시 내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18세기 초반 순조 때 김매순이 한양의 세시풍속을 모아 편찬한 ‘열양세시기’에 보면, 조선왕조의 법도가 겸손하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여 설날 하례 행사를 대개는 임금이 정지시켰다고 하였다.
 그래서 의정부대신이 종친과 문무백관을 이끌고 인정전 뜰 품계석 아래 서서 내관을 통해 “정조(正朝)에 문안드립니다”하면 임금이 내관을 내보내 “알았다”고 전하는 것으로 하례를 마쳤다.
 그럼 왕은 뭐라고 덕담을 하였을까. 확실치는 않지만 설날 왕의 공적인 덕담은 ‘국조오례의’에서 보듯이 신년을 같이한다는 정도인 것 같다. 순조 3년 설날, 순조가 대신들을 불러 보고 “경들은 모두 평안하게 새해를 맞았는가?” 정도의 덕담을 건넸다.
 그렇지만 왕의 사적인 덕담은 보통사람들과 같다. 숙종은 새해 고모에게 보낸 덕담 편지에서 “아주머님께서 새해는 숙병이 다 쾌차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라고 하였다. 사가(私家)처럼 바램을 담고 있다.
 숙종의 덕담에서 또 특이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래 완료형으로 말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자료를 소개하면서 “조선 시대 신년 덕담에서 특이한 것은 바라는 바를 확정된 사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설 덕담은 새해 첫날에 서로간에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말로 잘되기를 비는 말이다. 1860년경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보면, 설날에 친구나 젊은이를 만나, “올해는 꼭 과거시험에 급제하시오”, “관직에 나아가시오“, ”득남하시오“, ”돈 많이 버시오“ 등 덕담을 하여 서로 복을 빌고 축하하였다고 한다. 19세기 사람들의 바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설에는 임금도 신하도 공식적으로는 휴일이었다. 조선시대 공식적인 휴일은 없었으나 왕과 왕비의 생일, 왕대비의 생일, 명절(설, 추석) 등은 쉬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에 설날부터 초사흘까지 승정원과 각방에서 공무를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에 의하면 원정을 전후로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준다고 하였고, 매월 초하루에는 관리에게 휴가를 준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조선후기 실록에 보면 설날에도 국왕이 중신들과 함께 국정을 처리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온다. 설날에도 원칙과 달리 실제로는 임금이 쉬지 못하는 경우들이 조선후기로 가면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설날 임금은 팔도에 백성들을 위무하면서 농사일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권농윤음(勸農綸音)을 내리기도 하였고, 노인들에게 세찬을 내리기도 하였다. 주로 조선후기의 일들로 추정된다.
 올 한해 좋은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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