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안 광복회 전라북도지부장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에 있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역사가 100년에 도달했다. 마땅히 돌아보고 자축해야 할 역사임에도 요즘 현실을 보면 1919년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지닌 이들이 많지 않고, 그마저도 몇몇 장면으로 박제되어 있거나 막연한 옛날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고난이었으나 필경엔 희망의 증거로 남은 100년 전 오늘을 마주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곧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새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이라는 사회진화론이 만연하고 차별이 엄연했던 신분 사회에서도 온 민족이 한목소리로 독립을 외치며 최초의 정부를 세웠던 과거의 선구적 행동과 공공의 가치로부터 끊임없이 발신되고 있는 메시지를 오늘의 세대와 공유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3·1운동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전신으로 뿌리내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재발현 되는 모습을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16년 국정 농단에 대한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열린 촛불시위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촛불시위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됨으로써 위기 속의 민주주의를 또 한 번 국민 힘으로 지켜내는 결과를 만들었다. 깨어 있는 다수의 시민들이 피 흘리지 않고도 부당한 권력을 심판하고 몰아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 촛불시위의 핵심 가치는 ‘민주주의’와 ‘비폭력’, 그리고 ‘평화’에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세 가지 가치가 일찍이 독립운동의 교두보가 된 3·1운동에서 먼저 빛났다는 점이다. 당시 성숙한 시민사회가 없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열망에 있었다.
이렇듯 선조들의 위대한 뿌리를 올바르게 이어받아 계승한 촛불시위가 있기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더욱 뜻깊다. 반면에 제자리에 고인 채 정화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 또한 한 시대에 공존하고 있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잔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최근 들어 교육현장의 친일잔재 청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일각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은 마땅하나 당시 시대상 등을 따져봐야 하고 예술가들의 성과를 인정할 것이냐 무효로 볼 것이냐는 견해의 차이도 존재한다. 오랜 역사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문을 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대의 어두운 줄기를 과감히 잘라내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고난과 희망의 100년사를 생생히 복원하고 기억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0년간 우리가 겪은 강대국 갑질의 고통과 일제 강점에 대한 분노, 분단 74년을 돌아보며 공감하는 것은 곧 일제 잔재 청산, 분단 극복, 평화 통일의 문을 여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북 관계의 대전환이 벌어지고 차별과 위계가 만연한 오늘날, 다음 세대들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 흘러 우리는 다시 평화 시대로 가는 출발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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